시화

절망 (김수영)

검하객 2013. 11. 13. 17:51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르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전쟁은 전쟁을, 폭력은 폭력을, 고문은 고문을, 무지는 무지를, 나약은 나약을, 오만과 무지는 그 자신을, 협박은 협박을, 천끼는 천끼를 반성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존재는 위태롭다. 그리고 방탕은 방탕을 반성하지 않는다. (두자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