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오랜만의 독서

검하객 2014. 7. 16. 11:57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독서'란 걸 했다. 어제 오후부터 지금까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김대웅 옮김, 아침)으로 1997년에 나온 재판 6쇄본이다. 초판은 1987년 11월 30일에 나왔다. 87년 11월이면 군복무 23개월째일 무렵이다. 6.10 선언으로 민주화의 열기가 가득한 시절, 엥겔스의 저작은 금서 목록에 올라있었겠지만 그 금압의 줄이 느슨해지고 있던 시절이 아닐까? 아마 역자는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 어떤 신념과 열정으로 이 책을 번역하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이 책은 당시 한양대 정문 맞은편에 있었던 서점 '한마당'에 가야 구할 수 있는, 운동권 학생(특히 여학생)들의 필독도서 목록에 들어있었을 것이다. 전경의 불심검문에서 이 책이 나오면, 불온서적 소지 죄로 책이 압수되거나 인격적 곤욕을 치르었을 것이다.

  어쨌건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이 책이 내 손에 잡혔다. 작년인가 올해인가, 혼인과 가족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문득 이는 국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깨닫고, 그럼 국가의 탄생에 대해서는 뭘 봐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 책을 떠올렸다. 그런데 오래된 이 책을 어디서 구한다? 10여년 전 서가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던 8,90년대 사회과학 서적들들 상당수를 정리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버려진 게 아닐까? 헌데 이 책이 현관 서가 한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꽂혀있는 게 아닌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환호하며 책을 뽑아 먼지를 닦았다. 하지만 아직 인연이 더 익었는지, 얼마간 읽다가 다른 일에 밀려 손을 놓았다. 그리고 어제 오늘 다시 집어 든 것이다. 초판 서문부터 시작해서, 100쪽 가까이 읽었다. 이만큼 차분하게 책을 읽은 지가 언제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1884년 초판이 나왔는데, 이 시기 유럽에서는 혼인 및 가족제도의 변천에 대한 연구가 꽤 진행되고 있었다. 엥겔스가 인용한, 당시의 주요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1861년, 바호펜, "모권론"(Mutterrecht)

 1866년, 맥레난, "원시적 혼인"

 1871년, 모오간, "친족제도와 인척제도"

 1884년,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초판

 1890년, 막심 코발레프스키, "가족과 재산의 기원 및 발전 개요"

 1891년,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4판        

 

 이중 내게 있는 것은 맥레난의 "혼인의 기원"(김성숙 옮김, 나남) 뿐이다. 바호펜이나 모오간의 책은 아직 번역이 안 되어 있는 듯하다. 이 분야에 대한 우리의 지적 토대가 무척이나 허약하다. 앞으로 '혼인과 가족', '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먼 안목에서 이 분야에 대한 차분한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다. 엥겔스의 글, 매우 좋다! 튼실하다. 시적 통찰과 논리적 절차가 갖추어졌다. 물론 선사 시대 제도의 변화에 대한 결론은 많은 부분 추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 시적 통찰력이다. '혼인과 이야기', 평생 잡고 씨름할 만한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