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 금강 하류
濁流
(1937,8년 조선일보 연재, 1939년 박문서관 간행)
1. 인간기념물
錦江 ……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둥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 가지고는(한강이나 영산강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이 제주도를 건너 보고 뜀을 뛸 듯이, 전라도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 또 한 번 우뚝 …… 높이 솟구친 갈재(蘆嶺)와 지리산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長水로 鎭安으로 茂朱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놈이 영동 근처에서는 다시 추풍령과 속리산의 물까지 받으면서 서북으로 좌향을 돌려 충청 좌우도의 접경을 흘러간다.
그리고 북쪽 줄기는,
좀 단순해서, 차령산맥이 꼬리를 감추려고 하는 경기 충청의 접경 진천 근처에서 청주를 바라보고 가느다랗게 흘러내려오다가 조치원을 지나면 거기서 비로소 오래 두고 서로 찾던 남쪽 줄기와 마주 만난다.
이렇게 어렵사리 서로 만나 한데 합수진 한 줄기 물은 게서부터 고개를 서남으로 돌려 공주를 끼고 계룡산을 바라보면서 우줄거리고 부여로 …… 부여를 한 바퀴 휘 돌려다가는 급히 남으로 꺾여 단숨에 논뫼 강경이까지 들이닫는다.
여기까지가 백마강이라고, 이를테면 금강의 색동이다. 여자로 치면 흐린 세태에 찌들지 안한 처녀적이라고 하겠다.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에서부어 시작하여 백제 흥망의 꿈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풍월도 좋거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한참이지, 강경에 다다르면 장꾼들이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던 수면의 꿈은 깨어진다. 물은 탁하다.
예서부터가 옳게 금강이다. 향은 서서남으로 빗밋이 충청 전라 양도의 접경을 골 타고 흐른다.
이로부터 서 물은 潮水까지 섭슬려 더욱 흐리나 그득하니 벅차고, 강 넓이가 훨씬 퍼진 게 제법 양양하다.
이름난 강경벌은 이 물로 해서 아무 때고 갈증을 잊고 촉촉하다.
낙동강이이 한강이니 하는 다른 강들처럼 해마다 무서운 물난리를 휘몰아 때리지 안해서 좋다. 허기야 가끔 홍수가 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에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까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에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그러나 항구에서 하룻밤 맺은 정을 떼치고 나간다는 마도로스의 정담이나, 정든 사람을 태우고 멀리 떠나가는 배꽁무니에 물결만 남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갈매기로 더불어 운다는 여인네의 그런 슬퍼도 달콤한 이야기는 못 된다.
벗어부치고 농사면 농사, 노동이면 노동을 해먹고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늘’이 아득하기는 일반이로되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도 또 달라 ‘明日’이 없는 사람들 … 이런 사람들은 어디고 수두룩하게 이곳에도 많이 있다.
정주사(丁主事)도 갈데없이 그런 사람이다.
정주사는 시방 미두장(米豆場) 앞 큰길 한복판에서, 다 같은 ‘하바꾼(節치기꾼)’이로되 나이 배 젊은 애숭이한테, 멱살을 당시랗게 따잡혀 가지고는 죽을 봉욕을 당하는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