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병동 606호실은 금강 하구
금강 하구에 여숙을 잡아놓고 한 이틀 채만식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입원을 위해 짐을 꾸리며, "탁류"를 찾았더니 마침 70년대 한국문학전집(삼성출판사)의 채만식 권이 있어 가방에 넣었다. 수술이 끝나고 아주 들뜬 마음으로 "탁류"를 열었다. 초장은 금강에 대한 지리적인 설명으로 시작한다. 충청도 진천과 전라도 장수에서 발원하는 두 물줄기가 조치원 근방에서 만나 곰나루와 낙화암 아래를 지나는데 여기까지는 물 맑은 백마강이며, 논뫼 강경부터는 조수와 섞이면서 탁한 물줄기가 흘러가는데 여기부터가 금강이며 탁류라는 것이다. 인간기념물 정주사, 그의 딸 초봉이와 계봉, 허영끼로 가득한 은행원 고태수, 고태수를 등쳐먹는 미두장의 협잡꾼 곱추 장형보, 순실한 의사 견습생 남승재, 미곡 노점으로 시작해 번듯한 싸전 주인으로 성장한 - 하지만 자식이 없는 - 한참봉, 고태수와 배를 맞추다가 뒤끝이 두려워 초봉에게 보내려 혼사를 주선하는 그의 부인, 濟衆堂이라는 이름과 달리 술수에 능한 바람둥이 박제호, 그의 부인 윤희 등이 얽혀 만들어가는 세태가 곧 탁류이다. 파멸에 이르는 초봉의 가련한 삶이 눈에 선하고, 대학 시절에 읽었던 "테스"의 청순하지만 그래서 비참하게 살았던 테스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질감이 두드러지게 구어체 시속 말들이 능청능청 흘러가면서도 섬세한 촉감을 놓치지 않는 글은 문장의 명품이다. 2014년 11월 18일 골절된 손목 접합 수술을 받은 날 오후 마취가 조금씩 깨어가던 606호 병동은 채만식과 초봉을 비로소 만난 금강 하구의 탁류이다. 붕대를 두른 손목을 보다가 초봉의 삶을 가늠해보는 마음이 모두 애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