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루소 앞에 서다
루소를 만나기 위해 그렇게 먼 길을 돌아왔던가! 아쉬움과 그리움, 자괴감과 무력감을 전전하다가 눈을 떠보니 루소가 앞에 있다. 우리가 서있는 곳은 지대가 아니라 空洞과 虛無이다. 사람들은 자기 방황의 숨은 지향과 목적을 알지 못한다. 간혹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여기를 가려고 그동안 헤맸구나!' 하고 자각하기도 한다. 이런 저런 책을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의 사이를 헤매고, 답답하고 아쉽고 부정하던 것들의 실체가 희미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국가와 개인, 고독과 자유, 지난 역사에서 이 문제를 품고 갈 만한 역 중의 하나는 18세기 혁명 전후의 프랑스. 참으로 예기치 않은 행보이다. 내가 혁명 전후의 프랑스에 와있다니 말이다. 그러니 삶도 사유는 모두 내 의지와 이성의 통제 범위 먼 밖에 있는 것이다.
대혁명으로 몰락한 루이 16세는 자신의 왕조를 망친 인물로 볼테르와 루소를 꼽았다고 한다. 대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과연 루소가 지금처럼 기억될까? 루소의 생각이 과연 대혁명의 사상적 기폭제가 되었던 것일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루소와 대혁명의 인과관계는 필연이 되었다. 앞으로 한동안 루소와 만날 것이다. 그런데 나도 사회의 부적응자에 자기 모순에 가득 차있고,루소도 외부 규칙과는 불화하며 내면의 우물에 얼굴을 비추었던 사람인데, 대화가 가능할까?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면 되고, 굳이 말을 꺼내지 않으면 되고, 합의하려고 하지 않으면 되고, 친분을 확인하려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루소는 1712년 6월 28일 제네바에서 태어나, 1778년 7월 2일 파리 교외의 에름농빌에서 죽었다. 1712년 조선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났지만, 그중 뒤에 그 탄생이 기억되는 사람은 신경준, 안정복, 최북 등 몇 명에 지나지 않는다. 1778년이면 이덕무와 박제가가 규장각 검서관의 신분으로 북경에 다녀왔던 해이다. 계산해봐야겠지만, 루소가 숨을 멈출 때 박제가는 북경 어딘가에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날 박제가는 하늘에서 지는 별을 보았고,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는지 궁금하다. 아마 그런 느낌이 있었어도 그 실체를 알지는 못했으리라. 우리들의 삶 대부분이 그렇게 지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루소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디드로(1713~1784), 파리에서 가깝게 지내다가 뒷날 멀어졌다. 그는 세련된 파리장이었다고 한다. 예전에 읽은 소설 "수녀"와 읽다 만 "운명론자 자크"도 오늘을 예비했던 것이다. 볼테르(1694~1778), 루소보다 18살이나 많았다. 디드로와 함께 백과전서파의 대표 인물이다. 역시 뒷날 루소를 매우 싫어했다. 같은 시기 영국에는 아담 스미스(1723~1790)가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독일에서는 칸트(1724~1804)의 철학의 신기원을 열었으며, 오스트리아에서는 모짜르트(1719~1787)의 음악의 진경을 개척했다.
그 사상도 역사도 잘 알지 못한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자신도 없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루소 같은 사람만이 내 영혼을 위로해주고 이해해주고 격려해준다는 사실 말이다. 그 자기모순에 가득 찬, 그리고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삶이 말이다. 망망한 우주를 항해한다. 수많은 별들 사이를 지나지만 마음 붙일 곳이 없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작고 초라하지만 강하게 빛나는 별을 만나게 된다. 나도 모르게 거기 다가가서,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막혔던 한줄기 숨을 내쉰다. 그 별이 나를 환대해주는 것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