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가 넓으면 춤사위가 산다, 밑천의 중요성
맹자는 인재가 많은 등(滕)나라를 미련없이 떠났고, 제나라를 떠나면서는 사흘이나 교외에 머물면서 입맛을 떨치지 못했다. 등은 약소국이고 제는 강대국이었기 때문이다. 연암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 장사 밑천을 대주려면 넉넉히 주었어야 한다며, 대뜸 맹자 이야기를 끌어다 썼다. 동서의 모든 경전은 이처럼 역사로 풀어 읽어야 한다. 하지만 밑천이 많은 걸 결정하는 사회는 나쁜 사회이다. 노력이 밑천의 부족을 상쇄할 수 있어야 좋은 사회이다.
與中一 (권 5, 영대정잉묵)
그대가 사준(士俊)에게 돈 백 금(金)을 주면서 장사를 하라 했다니, 어찌 그리 적게 주었습니까. 결국에는 사준이 빈손으로 돌아올 것이니, 그대는 그때 가서 날더러 말을 아니해 주었다고 허물일랑 마시오.무릇 한 집의 살림살이를 잘 다스리는 것이 천하의 정사를 다스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탕왕(湯王)의 땅은 사방 칠십 리요 문왕(文王)은 백 리의 땅으로 일어났는데, 맹자는 이를 구실로 삼아 걸핏하면 은 나라와 주 나라의 예를 끌어와 당시의 임금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등(滕) 나라로 말하자면 ‘임금을 제대로 만나 도를 행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이를 만했습니다. 등 나라 문공(文公) 같은 천하의 어진 임금이 군주로 있고, 허행(許行)과 진상(陳相) 같은 당시의 호걸이 백성으로 있었지만, 그런데도 등 나라를 떠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 형세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제(齊) 나라와 위(魏) 나라의 임금은 지극히 불초하지만, 그래도 못내 돌아보고 서성대며 차마 떠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 토지가 넓고 인민이 많고 무기가 날카롭고 모든 물자가 풍부하여 그 형세를 이용하면 공(功)을 이루기 쉽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맹자의 말에 “제 나라를 가지고서 왕천하(王天下)하기란 손바닥 뒤집기나 마찬가지이다.” 하고, 등 나라에 대해서는 “이리 잘라 저리 맞추면 거의 사방 오십 리가 될 것이니 큰 나라를 만들 수가 있다.” 하였던 것입니다. 스승의 도는 제 나라를 훨씬 높게 보고 등 나라를 낮추어 보는 것이 아닌데도 때에 따라 맹자가 굴신(屈伸)의 차이를 보인 것은 대국과 소국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이요, 등 나라 땅이 은 나라나 주 나라보다 훨씬 작은 것이 아닌데도 맹자의 말과 실제 행동이 서로 어긋난 것은 삼대(三代)와 전국(戰國)이라는 고금(古今)의 시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足下予士俊百金而爲販。何其少予也。將見士俊空手而歸。其時足下勿咎僕不言也。夫能治一家之產者。與爲政於天下何異哉。湯之地方七十里。文王百里興。孟子以爲口實。動引殷周以說時君。至於滕。可謂得君而道可行矣。文公天下之賢君也而作之主。許行,陳常當時之豪傑也而爲之民。猶去之者何。勢不可也。齊魏之君。至不肖。猶眷顧徊徨。不忍去者。何也。以其土地之廣也。人民之衆也。兵甲之利也。貨賂之厚也。因其勢則易爲功爾。故其言曰。以齊王猶反手也。於滕則曰。截長補短。將五十里。可以爲大國師。道非加尊於齊。而有貶於滕也。時有屈伸者。大小之勢異也。滕之地非加小於殷周之國也。言實相戾者。古今之時異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