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話

薛濤의 노래

검하객 2015. 3. 11. 17:45

 

  가끔 기녀 이름을 불러보아도 그 사랑과 그리움 사연은 품지 않았는데, 이량 때문에 설도의 삶과 시 일각을 찾아보았다. 그녀가 아직껏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놀랍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따져보지 못하고, 스쳐 본 그녀의 행색을 정리해본다.

 

 

薛濤 (768~832)

 

아버지는 설운(薛鄖)으로 땅에서 관리 생활. 설도는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成都에서 살다. 아버지가 죽어 살림이 어려워지자 16세에 樂籍에 들어갔고, 거기서 나온 뒤에는 평생 혼인하지 않았다. 뒷날 浣花溪에 살았다. 악적에 든 뒤로는 淸客을 겸한 歌伎의 신분으로 막부 출입. 위고(韋皋)秘書省 校書郎의 관함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왕왕 그녀를 女校書라 불렀다. 후세에 歌伎校書라 부르게 된 연유이다. 태어난 해는 알려지지 않았고, 죽은 해는 段文昌이 두 번째 촉을 다스렸던 832~835 사이이다.

 薛濤는 당대의 元稹, 白居易, 張籍, 王建, 劉禹錫, 杜牧, 張祜 등과 시를 수창했다. 浣花溪에 살면서 복사꽃 빛깔의 종이를 만들어 시를 썼으니 이를 薛濤箋이라 한다. 碧雞坊吟詩樓를 짓고 여도사 裝束과 사귀면서 만년을 고요하게 보냈다. 王建寄蜀中薛濤校書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만리교 부근에 여교서 있어           萬里橋邊女校書

비파꽃 밭에서 문 닫고 사네          枇杷花裏閉門居

세상에 재자들이 제법 있으나        掃眉才子知多少

춘풍 노래 모두들 그만 못하지       管領春風總不如

  

劉采春, 魚玄機, 李冶와 함께 당대의 4대 여성 시인으로 꼽히고, 卓文君, 花蕊夫人, 黃娥와 더불어 4才女로 일컬어진다8,9세부터 음률을 알았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뜰에 앉아 오동나무를 가리키며 뜰가의 오래된 오동나무는, 줄기가 구름 속에 솟아있도다. 庭除一古桐, 聳幹入雲中이라 하고 설도에게 잇게 하자, 즉각 가지는 남북으로 새들을 맞고, 잎새는 오고가는 바람 보내네. 枝迎南北鳥, 葉送往來風.”이라 응답했다. 아버지는 이 시가 딸의 순탄치 않은 운명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名媛詩歸) 아버지가 돌아간 뒤 생활이 궁핍하여 16세에 樂籍에 들어갔다.

 설도는 한가로울 때면 樂山 특산의 胭脂木浸泡搗拌하여 즙을 내고 거기에 雲母粉을 칠해 玉津井의 물을 들여 특수한 종이를 만들었다. 종이 위에는 불규칙한 松花 무늬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松花箋이니 薛濤箋이니 하였다. 崇麗閣 남쪽에 薛濤井이 있다. 명대에 설도전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 우물에 붙인 이름이다. 설도정의 물로 빚은 술은 薛濤酒라 한다. 설도의 무덤은 成都 望江樓公園 西北 모서리 대숲 깊은 곳에 있다.

 

 

   

  설도의 무덤이 있는 성도 망강루공원의 1940년대 모습                                 설도가 분홍색 시전지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설도정 

 

唐末의 시인 鄭谷의 시에 이런 구절 있다. “渚遠清江碧簟紋, 小桃花繞薛濤墳.” 이로 보아 당나라 시기 설도의 무덤 주위에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청초 鄭成基昔日桃花無剩影, 到今斑竹有啼痕.”라 하였으니, 그 당시에 이미 복숭아나무는 사라지고 대숲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설도는 65세에 죽었는데, 당시 劍南節度使 段文昌은 그녀를 위해 묘지명을 지었고, ‘西川女校書薛濤洪度之墓라 새긴 비석을 세워주었다. 이로부터 女校書가 설도의 별명이 되었다. 설도의 시 중에서 세상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春望詞> 4수이다.    

 

꽃이 핀들 함께 보지 못하고          花開不同賞

꽃이 져도 같이 슬퍼 못하네          花落不同悲

님이여 당신 계신 그곳에서는        欲問相思處

꽃은 언제 피고 언제 지나요          花開花落時   

 

나와 그는 떨어져 있다. 꽃이 펴도 함께 보지 못하고, 꽃이 져도 같이 슬퍼 못한다. 하여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 계신 곳에 꽃은 언제 피고 언제 지나요? 여기와 같은가요? 당신도 꽃이 피고 질 때 날 생각하나요? 하지만 마음뿐 묻고 싶어도 물을 수 없다.

 

이 풀로 동심의 매듭을 지어          攬草結同心

내 맘 아는 당신께 보내려고요       將以遺知音

봄시름 이제 막 끊어졌는데           春愁正斷絕

봄 새는 다시금 또 슬피 울어요       春鳥復哀吟   

 

하여 풀로 동심의 매듭을 지어 먼 곳 당신께 보내려 한다. 이렇게 마음먹자 문득 시름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동심결을 받으면 님이 나를 잊지 않고 옛정을 잊지 못해 찾아오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어찌 기약하는가? 그건 잠깐의 자기 위안이요 희망에 불과하다. 실은 자신도 믿지 못한다. 그러자 일순 막혀있던 서글픔이 밀물처렴 밀려온다. 봄새 소리가 슬플 리 없건만, 내 맘이 온통 서글프니 새 노래도 구슬프게 들린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風花日將老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佳期猶渺渺

두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不結同心人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空結同心草 (김억 역)

 

그러는 사이 봄은 다 가고 꽃잎은 모두 바람에 흩날린다. 님에게서는 소식이 없고, 내 마음을 전할 방법도 없다. 혼자 마음만 안타까울 뿐. 동심의 매듭은 지었지만 보낼 길 없어, 가끔 그걸 보며 부질없는 한숨이 나온다. 

 

꽃이 가득 핀 걸 어찌 견뎌요         那堪花滿枝

그리움만 하염없이 일어납니다      翻作兩相思

아침 거울 위에 눈물 지는 걸         玉箸垂朝鏡

봄바람아 너는 알지 못하니           春風知不知   

 

 꽃이 만발하면 그리움이 짙어져 외로움을 견딜 수 없다. 아침에 거울 보며 단장하는데 나도 모르게 두어 방울 눈물이 진다. 하지만 내 외로움과 눈물을 봄바람은 알 턱이 없다. 세상 모두 내게는 무심하고, 나는 혼자 버려져 있다.   

 

牡丹」   

 

지난해 늦봄에 꽃이 질 적에           去年零落暮春時

이별 아파 붉은 종이 적셨답니다     淚濕紅牋怨別離    

무협 이별 마음에 아니 떠나니        常恐便同巫峽散

무릉의 기약을 어찌 하나요            因何重有武陵期    

언제나 꽃에다 마음 전하니            傳情每向馨香得

말 없이도 서로의 마음 알지요        不語還應彼此知   

창가에서 잠을 청하다가도             只欲欄邊安枕席

밤 깊도록 서로를 그리워하네         夜深閑共說相思

 

元稹은 설도보다 11살이 적었다. 80927세의 원진은 감찰어사가 되어 按察兩川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설도와 만나게 되었다. 당시 원진은 상처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눈이 맞았다. 세상 사람들은 아래 「연못 위 한쌍의 오리 池上雙鳧를 원진에게 준 시라고 하지만, 설도가 미쳤으면 모를까 그럴 리는 만무하다.  

 

짝지어 연못 위에 터를 잡고서      雙棲綠池上

아침저녁 나갔다 돌아오누나        朝去暮飛還

옛날에 새끼들을 거느리던 날       更憶將雛日

연잎 사이 한마음 추억을 하네      同心蓮葉間

 

연못 위 오리가 부부인 줄 어떻게 알며, 더구나 이들이 새끼 낳고 기르던 시절을 추억하는지 어떻게 알까? 외로운 심사의 역투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