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잃어버린 북방의 노래

검하객 2015. 7. 27. 00:51

 이번 송화강 답사 자료집의 첫머리에는 백석의 <북방에서 - 정현웅에게> (1940년 "문장" 7월호 발표)를 실었다. 이 노래의 화자는 역사적 자아이다. 우리가 두고두고 불러야 할 노래이다. 우리에게는 이만한 북방의 노래가 없다. 오늘 향을 피워 백석을 초혼하여, "선생의 시 중 득의작이 무엇이오?' 묻는다면, 아마 그는 이 <북방에서>를 꼽을 것이다. 과연 이 노래의 가치를 사람들이 알까?

 

 

北方에서 - 정현웅에게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여기서 나는 역사적 자아이고 민족의 자아이다

夫餘肅愼渤海女眞을          이 북방에서 명멸한 역사이다

興安嶺陰山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이 북방의 자연이다, 숭가리는 송화강을 가리킴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이 북방의 생명이자 야성이다  / 고대, 북방 지리 자연과의 일체감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지금 내가 자작나무와 이깔나무를 보며 슬퍼하는 것이다

 

갈대와 장풍의 붙들던 말도 잊지 않았다               지금 내가 장풍에 흔들리는 갈대숲을 보며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오로촌(鄂倫春)이 멧돌을 잡아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索倫)이 십리 길을 따라 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아니 우리가 잊고 있던 존재

 

나는 그때 아모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나왔다                         감정의 동요 없이, 보내는 자의 상처에 대한 배려 없이, 내 떠난 자리에 대한 생각 없이 

그리하여 따사한 해귀에서 하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 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안락한 삶에 취해, 기원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도둑인가 해서, 안락의 삶의 조건을 빼앗길까 두려워

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안락을 보장받기 위해, 비굴을 감수하다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비굴하고 두려움에 떠는 삶에 젖어들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까마귀도      많은 세월이 흐르다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야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시점에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떠날 때 느끼지 못했던 슬픔과 시름에 싸여

나는 나의 옛 하늘로 땅으로 - 나의 태반(胎盤)으로 돌아왔으나  나의 기원, 우리의 고향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라구름만 혼자 넋 없이 떠도는데

 

,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