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불회사, 운흥사, 삼봉 유배지, 백호문학관

검하객 2015. 8. 14. 18:20

 두리는 광주로 보냈다. 거기서 다움과 만나 놀 것이다. 우리는 불회사로 길을 잡았다. 도중, 광주여대 임준성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불회사로 오겠단다. 이렇게 감사한 일이! 어제 일을 해놓았으니 오늘은 급할 게 없다. 우리는 불회사 입구 장승 옆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그리고 천왕문 앞 다리 난간 위에서 일 없이 또 앉아 있었다. 10시나 되었을까, 임준성 선생이 나타났다. 호남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광주에 내려온 지 15년 만에, 호남 일대의 지리와 문물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불회사 내력이며, 차나무 숲, 비자림, 백일홍 등에 대한 설명이 무시로 튀어나오니 보는 것이 모두 새롭다. 어제 용선이 신세진 거 인사도 할 겸 주지스님을 만났다. (德仁) 커피와 차 대접을 잘 받으며 또 한참을 방장실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임선생의 도움을 받아 덕룡산 너머 서쪽의 운흥사로 이동했다. 자동차가 없으면 덕룡산을 오르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여긴 불회사보다 7배는 산골이다. 이곳은 운흥리라고 한다. 두 장군과 인사를 나누었다. 불회사 앞엔 下元唐將軍을 사납게(수염, 송곳니 등) 표현했는데, 여긴 上元周將軍을 남성으로 형상화했다. 아마 도교의 천문장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전통 장승의 음양 관념과 습합된 것으로 보인다. 절집은 한결 소박하다. 둘러보고 나오는데 스님이 공양을 권한다. 시계를 보니 11시 35분이다. 매우 감사하게 점심공양을 하고, 또 주지 스님과 마주앉았다. (丁印 慧圓) 차 얘기며 마음 얘기를 다리가 저리도록 들었다. 또한 오랜 인연의 결과이리라. 누구를 만나든, 듣기로 마음먹으면 마음이 절로 낮아지고 편안해진다.

 

  다음엔 어딜 가겠느냐고 임선생이 묻는다. 애초에 계획에 없었거니와 미안키도 하여 대답이 선뜻 목구멍을 넘지 못한다. 그렇다고 염치 보자기가 욕심 덩어리를 다 덮지 못한다. 어제 지도에서 정도전 유배지를 보고 마음이 끌린 터였다. 그곳은 다시면에 있는데, 다도면의 정 반대쪽에 있다. 거의 40ikm나 떨어진 곳이다. 미안한 마음을 눌러두고 신세를 더 지기로 했다. 다시면 회진리 消災洞, 정도전이 유배와서 머물던 곳은 대대로 구전되어 왔던 모양이다. 작은 오두막 한 채를 지어놓고, 흉물스러운 비석 하나를 세워놓았다. 주변에는 인가 한 채가 있을 뿐, 적막하고 암담한 곳이다. 밤마다 도깨비들이 출몰했을 법도 하다. 그의 마음은 몹시 불안했으리, 그리고 절망과 체념도 자주 했을 것이다. 초막 주위에는 당시 삼봉의 불안과 절망과 체념의 잡초가 무성하다. 이걸 공감하지 못하면 삼봉의 이야기도 결국 영웅담, 성공담으로 빠지고 말 것이다.

 

  나오는 길에 나주임씨의 종택이 있다. 이 마을에 백호 임제의 무덤이, 그리고 영산강 가에는 백호문학관이 있다. 임선생은 백호문학관에 우릴 내려주고, 광주로 돌아갔다. 나무아미타불, 그 앞길에 영광과 평화가 있으라! 번듯한 2층짜리 문학관에는 직원 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오늘은 학예사가 자리를 비웠단다. 백호라, 시조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와 한시 "十五越溪女, 愁人無語別 ---"과 대곡 성운에게 주었다는 "道不遠人人遠道, 山不離俗俗離山."과, 휴정 선사와의 만남을 읊은 한시 "一鳥不鳴處 ---"가 절로 떠오르고, "수성지"의 내용이 술술 풀려나오는 걸 보면 나에게는 소월과 백석, 미당만큼이나 인상 깊은 시인이다. 그 앞에는 풍호나루터가 있고, 영산강이 흐른다. 나주에 와서 영산강을 보지 못해 안타까웠던 참이다. 먼 옛날에는 중국과 일본을 갈 때 이곳에서 배를 탔던 모양이다. 택시를 타고 영산강을 따라 영산포를 지나 시청 옆  파크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내내 쉬기로 했다. 파크모텔, 좋다! 슈퍼에 가려고 나왔는데, 카운터에서 권종기 형을 만났다. 이런 기막힌 일이, 여주인이 누이동생이란다. 두리와 다움은 광주에서 자기로 했단다, 잘 생각했다.

  

 

 

 운흥사 입구 하원당장군, 왼쪽부터 임준성 선생, 차례로 차세대 전폭기

 

 

 불회사 하원당장군, 옆 김민혁의 키는 178cm

 

 

 정도전 유배지, 오두막 자리가 삼봉이 머물던 곳                    풍호나루터 자리 영산강, 고대 물류와 국제교류의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