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Big fish> (2004, 팀 버튼)

검하객 2015. 9. 6. 23:23

 강에는 특별한 물고기, 좀처럼 잡히지 앟는 큰 물고기가 있다. 이는 그가 대단해서라기보다는, 무언가 특별한 것만이 그에게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빠가 아들에게 큰 물고기를 잡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년 시절부터 아버지가 잡으려 했던 물고기는 어느날 금반지 미끼만을 물고 달아나고, 아들이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기어이 그 물고기를 잡았다. 물고기는 산란 직전이라 아버지는 그 물고기의 배를 가르지 않았다. 또 물고기를 살려놓으면 뒤에 아들이 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반지만 돌려받고 물고기를 살려주었다. 그리고 이날, 물고기와 자신이 같은 처지이며 같은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에 넣기 힘든 그런 여자를 여자를 얻으려면 결혼반지를 준비해야 한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아이가 태어났다.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렇다면 뭘 준비해야지? 나의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지? 지각 가능한 물질에 담아야 한다. 선물, 현금? (자동차, 집, 가방, 손수건 등) 훌륭한 표현이다. 물질이 아니면 마음이 담길 수 없다. 선물이 아니면? 우리는 여기서 예술이 지닌 事物性을 떠올려야 한다. 노래를 불러주거나 악기를 연주하여 들려준다? 훌륭하다. 멋진 그림을 그려준다? 훌륭하다. 그런 재주가 없을 때는? 이야기를 준비한다. 그것은 은유이기도 하다. 아들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먼 데서 일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태어난다. 그것은 물리적 사실이다. 그런데 아빠는 아들의 탄생을 큰 물고기의 포획, 반지를 되찾음, 그 물고기와 같은 운명이라는 깨달음과 직결된, 매우 신비롭고 비범한 탄생으로 만들었다. 무엇으로? 이야기로.

 

  신문기자인 아들은 사실이 아닌(?) 자기 도취적인, 지긋지긋하게 되풀이되는 이야기 때문에 아버지와 갈등한다. 결혼한 뒤 3년이나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3년만에 만삭의 아내와 함께 집을 찾는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자식을 낳으면, 쓸데없는 지식이나 불어 넣는 멍청한 아비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린 모두 이야기꾼이다. (난 입으로, 넌 글로) 아들은 아버지에게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죽음이 가까워지자, 아들은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의 맥락에서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와 아들은 병원을 탈출하여 강으로 간다. 강에는 아버지가 평생 한 이야기 속 인물들이 모여있다. 아들은 아버지를 안고 강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은 모두 기쁜 표정으로 아버지를 전송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키스를 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내려놓자, 아버지는 큰 물고기가 되어 유유히 사라진다.

 

  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죽어갔다. 물리적으론 숨이 끊어진 것이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물고기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물리적 삶 / 이야기의 삶) 아들은 죽어가는 아버지와 곧 태어날 자식의 사이에서 비로소 이야기를 이해하고 하게 된 것이다. 이 엄청난 사건을 "아버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시다." "아들이 (언제 어느 병원에서 몇 kg으로) 태어나다."  이렇게 말해버릴 수는 없다. 아버지의 죽음은 신의 귀환이고,아들의 탄생은 새로운 세상의 개벽이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지만, 나름대로는 다 대단한 사건이지만 그 대부분은 평범한 물리적 현상일 뿐이다. 때로 그것은 매우 특별한 일, 신화의 사건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은유와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에는 기계의 시간을 신화의 시간으로, 평범한 사건을 신비로운 사건으로,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A man tells his stories so many times that he becomes the stories. They live on after him. And in that way, he becomes immor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