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절(晩節)의 어려움
서하(西河) 어른 (이민서, 1633~1688)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선친 백강(白江, 이경여)이 완평군 이원익의 종사관으로 있으면 친분이 두터웠다. 계유년 백강이 전라감사로 부임하면서, 마침 은퇴하여 한강가에서 지내고 있는 완평군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헤어지기에 앞서 완평군은 공의 손을 끌고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말했다. "내게 임금께서 내려주신 술이 있어 공과 함께 마시고 싶네." 이어서 말했다. "나는 평생 꿈이 들어맞은 일이 많았네. 어제 꿈에 공이 호남 관찰사가 되어 나의 상례를 치러주었는데, 오늘 이렇게 찾아주니 나는 얼마 못가 죽을 걸세. 그렇지 않아도 빨리 죽고 싶은 마음일세. 근세에 정인홍 같은 이는 젊어서 얼마나 청렴하고 강직했던가, 세상에 다 알려졌지. 헌데 늙어 죽지 않더니니만 정신과 식견이 흐려져 자기 무리에게 속아 폐모론에 참여하지 않았던가! 내 그걸 보면 어서 죽지 못하는 게 걱정일세." 그 해에 완평군은 세상을 떠났다.
남학명(1654~1722), 『회은집(晦隱集)』
오리 이원익이 어느 날 한 원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도 심성이 변하여 소인이 되는 걱정을 하오?" 원로는 자신이 대단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런 걱정까지는 안한다고 했다. 그러자 이원익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인홍(1535~1623)의 강직함은 세상에 드문 바이니 그 명성이 자자할 때 폐모논의에 참여하리라 생각이나 했겠소? 하지만 늙어 뜻이 쇠약해져 벗들이 밖에서꾀고 자손들이 안에서 부추키니 결국은 폐모 상소를 올리고, 90이 다 된 나이에 처형을 당하고 말았으니, 나도 그러지 말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걱정이오." 정인홍은 광해군 때 인목대비 폐위 논의에 참여하여 재상이 되었다가 인조반정 직후 처형된 인물이다. 이경여는 이 일화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면서, 이원익이 늙어서도 몸가짐을 엄정하게 하여 晩節을 지켰다고 했다. (『공사견문록』)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위시키려 했을 때(1617), 이항복(1556~1618)은 중풍이 든 몸으로 반대 상소를 올렸다가 노여움을 사 북청으로 유배가서 죽었고, 정인홍(1535~1623)은 80이 넘은 나이로 참여하여 정승이 되었지만 5년 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89세의 나이로 처형당했다. 역사의 평가에 시비를 갈라 말하기 어렵고, 정인홍 쪽에도 얼마든지 변론의 근거와 옹호의 명분이 있다. 역사의 평가는 이항복에게 후한 편이니, 정인홍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통설일 뿐이고, 이 사안에 대한 해석에 정설(正說)이나 정설(定說)은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은 언제나 달라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역사 인물에 대한 평가는 사안과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으나, 늙어 절조를 지키기 어렵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지 않다. 하여 "채근담"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청루의 기녀라도 뒤에 지아비를 따르면 한 세상 행적이 문제 없고, 정숙한 부인도 늙그막에 몸가짐을 잃는다면 반평생의 청고함이 모두 그릇된다. 속담에, 사람을 보려면 뒤 반절을 보라고 했으니 참으로 명언이다. 聲妓晩景從良, 一世之胭花無碍, 貞婦白頭失守, 半生之淸苦俱非. 語曰, 看人只看後半截, 眞名言也." 기녀와 정부(貞婦)의 사례가 시대와 맞지 않기는 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머리를 끄덕일 만하다.
최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드러나는 몇몇 원로 지식인들의 행보가 눈에 띈다. 초지일관 극우 주장을 펼쳤던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나, 자기 선대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얼토당토않는 정책을 추진하는 박이 콤보나,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는 새누리당 재벌언론과 한기총, 그리고 그저 적대적 이분법의 세습 노예에 지나지 않는 교장 어버이 뭐 이런 사람들의 단체야 그렇다고 하자. 이들은 악독하고 무식하기는 해도, 대개는 속과 겉, 그때와 지금이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국정화 불가를 설파하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늙어서 자리와 허명에 이끌려 예전의 신념과 학자의 양심을 쓸개처럼 떼버리고 전체주의 악마의 대오에서 깃발을 들거나 나팔을 부는 것은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아마 그들은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 신념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관점과 중심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때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옳은 건 옳은 거고 그른 건 그런 거다. 이를 판단하는 정신의 작용을 智라고 한다. 나도 곧 늙어갈 것이다. 나도 모르게 추해지고, 그걸 감추기 위해 더 추해지는 것은 아닐지 두렵다. 뒷날 늙어서 판단이 어려워지면 지금 이 글이 판단을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