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노자

풀무와 추구(芻狗)

검하객 2018. 8. 12. 18:40


 

5장 대장간을 지나며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 其猶橐龠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郭店简本에는 天地之间, 其犹橐龠与! 虚而不屈, 动而愈出.” 네 구가 전부이다.

 

탕왕은 말했다. 천도는 선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음탕한 사람에게는 화액을 내린다. 하나라에 재앙을 내려 그 죄를 환히 드러내었다. 天道福善禍淫, 降災於夏, 以彰厥罪. (尚書·湯誥)

 

역대 제왕들은 없는 말 지어내기를 좋아했다. 하늘을 내세워 자신의 권위와 정당성을 높이이려 했던 것이다. 지각이 부족하고 거대한 존재에 종속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말에 현혹되고 내면화하고 강화한다. 하지만 의 누가 결정하는가? 천지는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芻狗는 고대 제사 때 사용하던 풀로 엮어 만든 개다. 원래는 희생으로 개와 돼지와 양 등을 사용했는데, 시대가 내려오면서 풀로 만들어 대용한 것이다. 제사를 지내기 전에는 귀하게 여기지만, 제사가 끝나면 아무렇게나 취급하다. “夫芻狗之未陳也, 盛以篋衍, 巾以文繡, 屍祝齊戒以將之及其已陳也. 行者踐其首脊, 蘇者取而爨之而已.” (莊子·天運) 세상에 있을 때에는 그 가치가 귀하지만 수명이 다하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하늘을 앞세우는 聖人이 백성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본디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

 

橐龠은 풀무이다. 노자는 대장간을 지났거나, 그 앞에서 일하는 모습을 살펴보았거나, 집안이 그 일과 친숙했다. 풀무는 의 다른 표현이다. 안은 텅 비어 있고,[] 거기에서 무한 작용이 일어난다.[] 사람의 마음도 그처럼 본디 비어있는 것이다.[] []은 꾸미고[] 벼려서[] 자기를 내세우는 행위이다. 이로부터 다툼’[]이 발생하니, 그것을 경계한 것이다.

 

노자는 전부가 아니면 차라리 전무를 택했던 사람이다. 대화하고 타협하여 절충을 구하는 것에 서툴렀다. 그건 때로 과격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럼 그만두자!” “그래, 없던 일로 하자!” 하여 나도 종종 핀잔을 듣는다. 폭력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결국 그는 세상과 말을 섞지 않는 극단의 선택을 했다. 대화와 타협에 서툰 내가, 한국의 중년 남성들이 나는 자연인이다에 빠져드는 이유도 똑같은 게 아닐까! 함곡관에 가서 그가 남긴 숨소리를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