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중산간 저물녁마다
바람을 움켜잡아 붓을 삼으면
만 마리 푸른 고래 몸을 엎드리었지
달빛 속 곰솔의 호위 아래
녹낭과 팽낭 사이 굴이 열리어
이승은 저승이 되고
저승은 이승이 되면
죽은자는 그 시절 그 모습으로 나토야
삭혀둔 옛 사연을 풀어내었지
그 표정 그 목소리들을
차마 떨치지 못해
바람붓이 부지런히 움직여
고래 푸른 등이 이야기로 가득해지면
길게 물을 뿜어올리면 떠나곤 했네
아직 고래들은 엎드려 있고
저승의 사연은 남아있는데
손에서 떨어진 붓은
바람이 되어, 다시
한라산 중산간을 배회하다가
사월 밀감꽃 흰 뺨을 어루만지리
현길언 선생을 화장장에서 배웅했다. 그 삶을 떠바친 두 기둥은 글과 신앙, 선생은 文骨과 信血의 존재였다. 신앙은 모르는 영역이지만,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쓰기 때문에 존재하고 존재하기에 쓰는 삶이었다. 1948~1950년 사이(9~11살) 제주에는 엄청난 비극이 있었고, 그 사람들의 사연들을 선생은 외면하지 못하고 이야기들로 빚어냈다. 강의실에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고, 일상에서 가까이 모시지 않았지만, 선생은 늘 멀지 않은 곳에 계셨다. 내가 아는 한 선생에게는 위선과 가식, 허영과 권위가 없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쓰이지 못한 이야기들이 선생이 떠난 뒷자리를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