敵 (2) 1965. 8. 6
제일 피곤할 때 敵에 대한다
바위의 아량이다
날이 흐릴 때 정신의 집중이 생긴다
神의 아량이다
그는 四肢의 關節에 힘이 빠져서
특히 무릎하고 大腿骨에 힘이 빠져서
사람들과
특히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련을 해체시킨다
詩는 쨍쨍한 날씨에 晴朗한 들에
歡樂의 개울가에 바늘 돋친 숲에
버려진 우산
망각의 想起다
聖人은 妻를 敵으로 삼았다
이 한국에서도 눈이 뒤집힌 사람들은
틈에 끼여 사는 妻와 妻들을 본다
오 결별의 신호여
이조시대의 장안에 깔린 개왓장 수만큼
나는 많은 것을 버렸다
그리고 가장 괴로워할 때 가장 귀한
것을 버린다
흐린 날에는 연극은 없다
모든 게 쉰다
쉬지 않는 것은 처와 처들뿐이다
혹은 버림받은 애인뿐이다
버림받으려는 애인뿐이다
넝마뿐이다
제일 피곤할 때 적에 대한다
날이 흐릴 때면 너와 대한다
가장 가까운 적에 대한다
가장 사랑하는 적에 대한다
우연한 싸움에 이겨보려고
흉악하기 짝이 없는 그놈의 적 때문에 분노가 치밀고 심장이 문드러지는데, 그놈은 해면처럼 흐물거리며 사라지고, 그놈의 지배를 받는 선량한 가짜 적들만 천진한 표정으로 날 본다,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 화는 나는데 화를 낼 곳이 없어 안에 쌓이는 화를 달래면서 세상에 無用 無力한 시를 쓰고 있는데, (먹고 사는) 사소한 일 때문에 아내의 목소리와 표정과 행동에 불만이 감지된다. 거슬린다. 마침 터질 곳을 찾지 못하던 화가 폭발한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소리를 지른 뒤에는 잘못을 알면서도 화를 가누지 못해 더 성질을 부린다. 적 그놈은 가만 있고, 내 화는 풀리지 않고, 아내는 상처를 입고, 부부 사이만 안 좋아졌다. “특히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련을 해체시킨다.” 그놈이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는 분열의 책동, 알면서 넘어간 김수영과 성인들, 그리고 지금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