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내일이 없고
나에겐 이유가 없어
사전의 위로 항목 자리에
거대한 블랙홀이 푸른 이빨을
드러내는 날이면
자꾸 창가를 서성거린다
이 들끓는 무의미를 덮어줄
무언가를 기다리는
아니 간절히 부르는 것이다
이윽고 해가 가려지고
음습한 기운이 낮게 깔리면
비로소 한 번 숨을 내쉬고
한 점 두 점 만만 점
작고 하얀 배들이 춤을 추며 침몰하고
황홀한 춤사위에 이어
난파선들이 바닥에 쌓이기 시작하면
나는 비로소 탈출을 시작한다
이런 날이면
지옥은 자신이 지옥임을 의심하고
지옥의 백성도 지옥의 백성임을
잊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