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는 심리적 사태에 고유한 시간성 및 인과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사후성(Nachtrӓglichkeit)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 말은 심리적 경험과 인상,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의 흔적은 이후의 심리적 사건에 의해서 끊임없이 재조직되고 재기록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즉 하나의 심리적 사태는 그 자체로 어떤 완결된 의미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다른 사건과 짝을 맺는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나중에 오는 사건이 먼저 있던 사건에 사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 의미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특히 무의식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심리적 현상은 이런 사후적 인과성의 효과로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생각이다. (183,4)
이런 프로이트의 사후성 개념은 심리적 사태가 물리적 사태로 환원될 수 없는 나름의 고유한 질서를 이루고 있음을 가리킨다. 물리적 사태는 비가역적 시간, 비가역적 인과의 질서에 종속되어 있다. 반면 어떤 심리적 사태가 사후적 영향 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은 심리적 과거가 미래에 나타나고 원인이 결과보다 늦게 도착한다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트 이후 심리적 사태의 이런 역설적 논리를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은 라캉이다. 정신분석이 심리적 증상의 원인을 주체의 개인적 역사에서 찾는다면, 라캉은 이 정신분석적 의미의 역사가 단순한 과거 혹은 과거의 사건이 아님을 강조한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 속에서 재구성된 과거이고, 이 현재적 재구성이 과거가 역사로서 출현하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184,5)
라캉에 따르면, 과거의 심리적 사태의 의미, 그 진리는 사후적 재주체화를 통해서만 현상한다. 이 사후적 재주체화는 언어적 재구조화이다. 심리적 과거는 이 언어적 재구성의 사후적 효과로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약속을 통해서 끊임없이 재조직된다. 게다가 그 재조직 이전에 심리적 현실은 아무 것도 의미하지 못한다. 심리적 사태는 미래로부터 과거로 소급해가는 사후적 해석에 그 현상학적 가능 조건을 두고 있다. (186)
김상환, 「새로운 해석의 탄생 1」 (김상환 외,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 민음사, 147~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