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우거진 곳은 들어가지 못한다. 뱀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둑을 내려가는데 계단이 끝나는 지점부터 5,6m 풀이 우거져 있다. 이런 곳을 지나쳐야 할 때면 난 본능적으로 뛴다. 위험한 행동이다. 다행히 다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읍내 숙소에서 곡성역을 지나, 곡성천을 따라 섬진강 침실습지에 도착한 참이었다. 바람은 시원하고 사람은 없고 길은 정갈하였다. 섬진강에 도착했는데 그 위로 달까지 떠있어 더없이 좋았다. 다만 해는 저무는데 다시 돌아가기는 조금 꾀도 나는 심경이었다.
우당탕탕 길에 들어서는데, 마침 저만치서 그 길을 오던 사람이 웃음 지며 다가온다. 나는 읍내로 돌아갈 차편을 물었는데, 그는 그건 별거 아닌 듯 대답했다. 이를 계기로 섬진강 가에서 우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인사가 트자 그가 대뜸 나이를 묻는다. 대충 얘기하자 그도 퉁치며 응대한다. 그는 맨발에 슬리퍼를 들었고, 빨간색 칼라 티셔츠를 입었으며, 날렵한 체격이었다. 곡성 사람이냐고 물었는데, 여기 저기 다녔다고 하는데, 묘한 당혹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 봇물 터지듯 아들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모 프로구단에서 지명을 받았는데,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성사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말에 두서가 없었다. 앞에 쌓인 긴 사연은 건너뛰고, 응어리진 마음부터 앞장서니 자연 두서가 없을 밖에. 우린 길가 난간에 손을 얹고 한참을 얘기했다. 그는 할 이야기가 많았고, 난 중간중간 질문과 추임새를 섞었다. 말인즉슨 금력과 학부모 입김으로 좌우되는 학원 야구계에서 겪은 깊은 좌절과 무력감이었고, 그로 인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의 응어리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직과 성실이라는 자신의 원칙과 신념을 옹호하는데 더 마음을 썼다.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하얀 달이 노랗게 변하기까지 정도였다. 30분이나 될까, 그 사이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달 뜨는 섬진강 가였기 때문일까? 나는 그의 전 생애를 모두 알아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본관과 고향, 아버지, 옮겨다닌 도시들, 형제들, 공부, 직업, 자녀들까지. 그의 이야기는 생생했고 분명했으며,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는 나를 숙소 앞까지 태워주었고, 우리는 헤어지며 주먹 인사를 나누었다. 아까 본 섬진강 위의 달처럼, 곡성에 어떤 연고가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기차역 마을에서 <기차반점>을 운영한다고 했다. 요즘은 점심 장사만 하고 저녁엔 일찍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가 만든 요리에 독한 술을 몇 잔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런 인연을 함부로 소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앞으로의 삶에서 그 마음의 응어리가 좀 풀어지기를! 정직과 성실로 재료를 다듬고, 세월과 곡절로 맛을 낸 음식은 특별한 맛을 지녔을 것이다. 먹어봐야 맛을 알까! 세상에는 맛이 넘쳐도 맛없는 음식이 많고, 먹어보기도 전에 맛이 넘치는 음식도 있다. 곡성 기차역마을에 <기차반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