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평안도 출신의 성직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경상남도 합천에서 생장하였으며 군인이었다가 대통령이 된 정치인이었다. 한 사람은 99세까지, 다른 한 사람은 91세까지 살았으니 모두 장수를 누렸다. 한 사람은 존경받는 종교지도자였고, 한 사람은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지만 끝내 세상의 비난 속에서 삶을 마감했다. 뭐 공통점이라곤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경직은 미국에 가서 5.16군사정변의 정당성을 홍보했고,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적극 옹호하였으며, 80년에는 전두환 군부가 개최한 조찬기도회에 참석하여 그 정신적 후원자를 자처했다. 한경직의 이러한 처신은 그 유래가 멀다. 그는 제주4.3 당시 온갖 만행을 저지른 서북청년회을 양성하고 독려했던 인물이다. (아래) 전두환은 220여 명의 사망 및 행불자가 발생한 5.18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죽음조차도 존중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행위는, 한경직이 종교를 앞세워 합리화하고 정당화한 학살과 억압에 비하면 경범죄에 불과하다. 그는 종교의 거룩함과 절대 진리의 이름으로 공산주의의 박멸을 외쳤는데, 그것이 야기한 비극의 상처는 우리 역사가 끝날 때까지도 아물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장미의 이름" 속 호르헤 수사이다. 신이 만든 지옥이 있다면, 전두환은 한경직 근처에도 가보지 못할 것이다.
양봉철, 「제주4·3과 서북기독교」, 『4·3과 역사』 9·10, 2010, 179~257쪽.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 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김병희, 『한경직 목사』, 규장문화사, 1982, 54~56쪽) 219쪽 재인용
“저들의 말 그대로 공산주의야말로 일대 괴물입니다. 이 괴물이 지금은 3천 리 강산에 횡행하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이 괴물을 벨 자가 누구입니다. 이 사상이야말로 계시록에 있는 붉은 용입니다. 이 용을 멸할 자 누구입니까?” (한경직, 「기독교와 공산주의」, 『한경직 목사 설교 전집』 제 1권, 137~149쪽) 255,6쪽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