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헌은 1916년 9월 제 2세 대종교 도사교에 취임한다.
1917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길림성 화룡현으로 근거지를 옮긴다.
1920년 영안 남관에 총본사를 두었다가, 1923년 세상을 뜬다.
윤세복은 1923년 樺甸縣에서 김교헌의 유명 “尙敎尹世復, 超昇司敎, 委任經閣符印.”을 받들고 제3세 도사교에 취임한다.
1924년 3월 16일 영안현 南關에서 의회 소집하고 弘範規制를 개정한다.
1925년 미쓰야협정(三矢協定) 체결 뒤 대종교를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1926년 포교금지령을 내린다.
1926년 5월 조선공산당 만주 총국이 설치된다.
1927년 6차 교의회 소집, 총본사 密山 當壁鎭 이전을 결정한다.
1924년 간행된 『寧安縣志』의 「寧安城市圖」의 남서쪽, 蛤螞河子 맞은편에 南關口, 南關渡口가 표기되어 있다.
현재 영안시의 서대가 동단에서 남쪽으로 뻗은 길을 '남관로'라 한다. 그 남쪽 강 연안에 영안시 도서관이 있다.
1924년 간행 영안현지의 영안현성시도에는 哈螞河子 맞은편 강 연안에 南關渡口, 南關口가 표기되어 있다.
마옥순 선생은 현재의 영안시도서관이 남관 자리라고 한다. 도서관 동쪽에 진정부가 자리잡고 있다.
강 연안에는 관공서가 들어서 있고, 그 북쪽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있다.
남관 일대는 1916년 화재 당시 가장 피해가 컸던 지역이다.
대략 도서관에서 그 북쪽 일대를 남관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