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먹어도 되고, 필요에 따라선 먹어야 한다. 남의 살을 먹을 수밖에 없는 건 자연의 섭리이며 생물의 운명이다. 하지만 모독에 대해선 생각해봐야 한다. 낚시에 걸린 생선이나 통발에 갇혀 사로잡힌 문어를 들고 희희덕거리며 요리와 맛을 운운하는 건 모독이다. 낙지 탕탕이도 미꾸라지 해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남의 살을 먹을 수 있지만 그들을 모독해선 안 된다.모든 작용에는 반작용이, 작동에는 반동이 있다. 모든 건 돌아온다. 생명을 모독하는 행위는 모든 건 돌아온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고, 그것이 초래할 두려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없으면 윤리도 없다. 윤리는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이며 거기서 비롯된 행위이다.
한국, 시베리아, 중국 동북, 유럽은 곰토템 지역이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곰을 조상으로 여겨 숭배했다. (단군 이야기는 이러한 곰 신앙이 건국신화와 습합된 것이다) 이들은 동시에 곰을 사냥했다. 곰 사냥 뒤에는 의례를 치렀다. 그 의례의 심리는 곰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들은 사냥의 주체가 다른 동물인 것처럼 연극을 했고, 곰을 조상에게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하늘이 보내주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죽인 것이지, 나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고도 했다. 그건 미안함의 표현이고, 살해 행위의 정당화를 통한 자기 위안이었다. 희생자에 대한 애도였으며, 둘 모두의 평안을 희구하는 기원이었다. 그리고 반격과 보복의 방지였다.
시간과 공간은 다 휘어있다. 세상 모든 건 둥글다. 그리고 모든 운동은 되돌아온다. 두려워할 줄 안다는 건 어떤 힘 앞에서 공포에 떨거나 비굴해지는 게 아니다. 저항력을 잃은 약자와 구석에 몰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소수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다. 그리고 무릎을 구부리거나 배를 땅에 대어 자신을 낮추는 행위이다. 이는 정치 지도자를 뽑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미 무장해제된, 때로는 죽어 널브러진, 또는 작고 약한 존재들을 두려월할 아는 것이야말로 강한 힘의 근원이며 공생의 방편이다. 선거의 계절이다. 그는, 그들은 나를 두려워하는가? 가장 먼저 살펴야 할 항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