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역사서에서 성공의 모형을 설정하기도 하고, 패배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내 삶에 적용시키면 들어맞지 않고, 당대 사회를 재도 도무지 맞지를 않는다. 역사서란 사실이나 공식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매우 주관적으로 사건들을 취사선택하고 축소 은폐 왜곡 과장하여 지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기록은 뒷시대의 특권이자 책임이었는데, 뒷 사람은 대개 승자이다. 따라서 그들은 전 시대의 모든 사건을 성공(선)과 실패(악)으로 구분하여, 선의 성공과 악의 실패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도덕의 가치판단은 지난 삶에 대한 평가에서 산출되는데, 승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侯之門, 仁義存.'이라 한 것이다. 역사서는 일종의 성공서이고 승자의 도덕서인 셈이다. 역사서는 참고 자료일 뿐 사실의 준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드라마의 내용을 사실과 혼동하는 것처럼, 역사기록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성호 선생은 이렇게 말했는데, 문득 그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역사서를 읽으며 성패를 가늠해보다 (讀史料成敗) 성호사설 20권, 經史門
천하 일의 10분의 8~9쯤은 요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역사서에 보이는 바 고금의 성공과 실패, 풀리고 막힘은 그 때의 우연에서 말미암는 것이 많다. 또 행동의 선악이나 인물의 현우 또한 반드시 그 실상을 얻었다고 하기 어렵다. 앞 시대의 역사서를 두루 살피고 여러 서적을 방증으로 삼아 여러 각도로 살펴 비교해야지, 한 책의 내용만을 오로지 믿어 단정해서는 안된다.
天下事, 大抵八九是幸會也. 其史書所見, 古今成敗利鈍, 固多因時之偶然. 至於善惡賢不肖之別, 亦未必得其實也. 歷考前史, 傍證諸書, 參驗而校勘之, 誠未可以專信一書而爲已定也.
옛날 정이천은 역사서를 읽다가 한 반쯤 이르면 문득 책을 덮고 그 성패를 생각하여 가늠한 뒤에야 다시 보았다. 생각과 맞지 않는 곳에서는 또 다시 정밀하게 생각하였다. 그 사이에 요행으로 성공한 일과 운이 없어 실패한 사연이 많았으니, 대개 맞지 않는 곳이 많았고 맞았다 하더라도 그걸 기준으로 삼아 믿을 수는 없다.
昔程子, 讀史到一半, 便掩卷, 思量料其成敗然後, 却看. 有不合處, 又更精思. 其間多有幸而成, 不幸而敗. 蓋其不合處固多, 而合處亦未可準信.
역사서란 성패가 이미 정해진 뒤에 지어진다. 그러므로 성공과 실패에 따라 꾸며내기에 그렇게 된 것이 마친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또 선하게 그리면서는 허물을 감춤이 많고 악하게 묘사함에는 장점도 버리기 일쑤이다. 그러므로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의 구분과 선악에 따른 응보 또한 자세히 확인해야 할 것이 있는 듯하다. 당시 훌륭한 계책은 이뤄지지 않고, 서툰 꾀가 우연이 들어맞았으며, 선한 가운데 악이 있고 악한 속에 선이 있는 줄을 알지 못했거늘, 천년 뒤에 무슨 수로 그 진짜 시비를 가릴 수 있으리요.
史者, 作於成敗已定之後. 故隨其成與敗而粧點, 就之若固當然者. 且善多諱過, 惡必棄長故, 愚智之判, 善惡之報, 疑若有可徵, 殊不知當時自有嘉謀不成, 拙計偶逭, 善中有惡, 惡中有善也. 千載之下, 何從而知其是非之眞耶.
이런 까닭에 역사서에 근거하여 성패를 가늠하면 맞는 곳이 많지만, 오늘날의 일을 가지고 헤아리면 열의 여덟 아홉은 맞지 않는다. 이는 내 지혜가 밝지 않아서가 아니라 워낙 요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오늘의 일만 그렇게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서의 내용 또한 참과 거짓을 가리기 어렵다. 나는 그러므로 말한다. “천하의 일은 만난 형세가 가장 중요하고, 행운과 불행이 그 다음이며, 옳고 그름은 최하이다.”
是以據史書料其成敗, 則合處多, 從今日目擊顧見者以思量, 則八九是不合, 此非但吾智之不明, 卽幸會之占多也. 非但今事之多戾, 亦史書之難眞也. 余故曰, 天下之事, 所値之勢爲上, 幸不幸次之, 是非爲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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