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1년 연경에서의 폭발적인 교유와 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무렵 박제가의 마음을 엿볼 필요가 있다. 7월 9일 사행은 朝陽에 도착하여 關帝廟에서 묵었다. 세 사신은 별 일 없이 잠든 가운데, 수행원 세 사람(朴齊家, 柳得恭, 李喜經)만 새벽에 이르도록 술을 마시며 잠들지 못했다. 세 사람은 각각 그날 밤의 정경을 시로 남겨놓았는데, 아래는 박제가의 작품이다.
처마 위로 달 뜨고 푸른 안개 차운데 月上觚稜凈綠烟
마름풀 빈 섬돌에 우두커니 앉았자니 空堦荇藻坐翛然
청산은 흥중부의 옛 시절 말해주고 靑山舊說興中府
묵은 절 아직까지 철목 시대 전해주네 古寺猶傳鐵木䄵
금오리 향로 식어 발도 막 내려가고 金鴨香寒纔下箔
벌레 소리 애절하여 선담도 그만두네 艸蟲聲切罷談禪
평생토록 쓸쓸한 우리들의 신세여 平生寂寂吾三子
구변의 반 다녔어도 뉘라서 알아주리 誰識行裝半九邊
首聯에서는 시공간의 배경을 제시했다. 밤이 깊어 초가을 안개가 서늘하고 달빛이 만든 나뭇잎 그림자가 물풀처럼 흔들리는 섬돌 위에 시인과 벗들이 우두커니 앉아있다. 頷聯은 조양에 서린 역사의 사연을 말했다. 이곳은 먼 옛날 중원을 호령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遼나라의 興中府가 있었으며, 그 뒤에는 세계 제국 건설의 주역인 테무친의 행적이 남아있는 장소이다. 遼와 元은 모두 대제국이었고, 그 주역들은 세칭 불후의 영웅들이다. 먼 곳에서 만난 먼 옛날 영웅과 그들의 위업은 문득 사람의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이 몰아간다. 그건 인생에 대한 허무감이고, 자신들의 삶이 속절없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지는 卑小感이다. 객관 사실만 제시된 無我之境으로 보이나, 景中情이고 物我는 相生互涵인지라 시인의 감정이 두루 착색되어 있는데, 物我의 사이를 이어주는 글자는 ‘說’과 ‘傳’이다. 그 순간 화자의 시선은 먼 옛날의 역사 사연에서 눈앞의 광경으로 옮겨온다. 인생처럼 밤은 깊어 향도 재만 남아 발을 내리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세상 名利 같은 온갖 假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禪談을 나누기 시작했지만 곧 그만두고 말았다. 가을을 예감한 풀벌레 소리들이 너무나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함련에서 숨겨졌던 시인의 내면은 頸聯에 오면 은미하게 드러난다. 차갑고[寒] 애절함[切]은 향의 재나 벌레 소리가 아니라 시인의 마음이니, 집착과 번민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미했던 마음은 尾聯에서 숨김없이 발화된다. 무엇이 이들을 잠 못 이루게 했는가? 천년 고도에서 이들이 공감한 것은 굴레처럼 운명 지어진 쓸쓸한[寂寂] 삶이다. 九邊의 반을 다니며 경륜을 넓힌다 해도, 넓은 천지는 그만두고 조선에 돌아가면 알아줄 사람 하나 없는 처지인 것이다. 박제가의 이 시는 조선사회에 있어 서얼 지식인의 비애와 절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 사신이 모든 잠든 밤에 세 수행원이 밤 깊도록 술을 마시며 시를 지은 일은 그 자체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또한 유득공 ․ 이희경과는 다른 이 시점 개인 박제가의 내면에 극도로 증폭된 공허감과 결핍감의 징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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