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북릉을 보고 나와 9.18박물관을 들렀다. 나를 포함 사람들은 굳이 어둡고 차갑고 잔인한 곳으로 가려하지 않는다. 기억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힘들여 가야 한다. 망각은 안대와 같아서 숙면을 가능케도 하지만, 어제 빠졌던 그 비참한 구렁텅이로 우리를 밀어넣기 때문이다. 패망한 일본은 북만주의 자국민을 포기했고, 많은 아이들이 중국인 가정에 맡겨졌다고 한다. 이중 상당수는 뒤에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그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임문성에게서 공감의 비애가 흘러나왔다. 소련군의 포로가 된 일본군 2만 명은 시베리아 강제노역에 처해졌는데 그중 반 이상이 죽었다. 이러한 사연들을 누가 기억하는가? 기억되지 못하면 역사도 아니고 과거도 되지 못한다. 불과 80년 전의 일이 아닌가. 이로부터 몇년 뒤에 난징대학살, 4.3, 한국전쟁 등이 잇달아 일어난다. 1980년의 광주와 2014년 4월의 세월호는 같은 사건인 셈이다. 9.18기념관, 심양답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