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箴은 유자에 대한 箴言, 유자를 찌르는, 즉 그 허위와 가식을 까발려 숨은 진실을 드러내는, 풍자의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说文解字』에서는 儒를 이렇게 풀이했다. “儒, 柔也, 術士之稱. 從人, 需声.” 은대에 儒는 상장례를 담당하던 사람을 가리켰다. 일정한 생산력을 갖추지 못해 고정된 수입 없이 남의 보수를 바라야 했기 때문에 유약한 성격이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儒는 공맹의 학문을 하는 사람을 일컫게 된다. 공맹의 학문은 개인으로부터 국가와 천하에 이르기까지 도덕률로 완성된 세상을 목표로 삼는다. (修己治人, 內聖外王) 그 이후 유학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관학과 통치이념으로 그 위상이 강화되고, 유자에게는 ‘지식인 · 지도자 · 지배자 · 교사 · 도덕가’ 등의 의미가 부과되었다. 위상이 높아지고 역할이 많아지면서 ‘儒者’라는 명칭에는 ‘표리부동한 이율배반적인 위선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박지원은 “儒者, 諛也.”라고 했다.
풍몽룡은 신분상 유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그는 과거를 통해 宦路에 진출하지는 못했는데, 이는 주류 계급에 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는 유자 계층의 가장자리에 머물렀다. 수많은 비판적 지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공맹의 학문을 중심으로 독서하는 유자의 신분을 떠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유자들의 허위와 가식 그리고 무능에 매우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풍몽룡이 첫 편에 儒箴, 즉 ‘유자들을 경계하는 잠언’을 편성한 이유이다. 「儒箴」에는 지식인 체하는 유자들의 무식함, 도덕과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속이 없는 허영심, 그리고 이 계층 내부에 팽배한 상호 불신, 나아가 이들의 궁핍하고 무력한 현실을, 즉 한 사회의 스승으로 포장되어 있는 유자들의 실상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고기가 저 숲속[儒林]에 있는데, 仁의 肝에 義의 쓸개를 지녔고, 忠과 潔을 품었으며, 樂을 쓰고 禮를 쓴 채, 입으로는 백가의 말을 읊조리고, 마음으론 만물의 이치를 통하니, 이름하길 碩德之儒라고 합니다.
나는 역사를 뒤지며 조사해 보았다. 이 역사에는 연대가 없고, 어느 페이지에나 ‘仁義道德’ 따위의 글자만이 삐뚤삐뚤 적혀 있었다. 나는 이왕 잠을 잘 수 없으므로, 밤중까지 걸려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그러자 글자와 글자 사이에서 겨우 글자가 나타났다. 책에는 가득히 ‘食人’ 두 자가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