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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소(沙河所)의 곽생(郭生), 홍대용(1765)

검하객 2017. 3. 18. 11:46


  행차가 사하소 점방(沙河所店房)에 이르렀다. 나는 여러 비장(稗將)들과 더불어 안방[內炕]에서 조금 휴식을 취하였는데, 그곳은 점방 주인이 거처하는 방이었다. 방 밑에 탁자가 깨끗이 정돈되었고, 책을 보고 글자를 쓴 흔적이 있었다. 내가 통역들에게, “점방 주인은 아마 독서하는 사람인 듯하다.” 고 하니, 통역들은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런 곳에 어찌 독서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얼마쯤 있으니, 점방 주인이 들어왔다. 나이 40여 세쯤 되어 보였다. 키는 크지 않고 몸집도 작은 편이었으나, 풍의(風儀)가 있어 보였다. 그의 성씨를 물으니 곽(郭)씨라 하였다. 나는 그에게 묻기를, “당신이 이렇게 서탁(書卓)을 갖춘 것을 보니, 여기서 독서하는 것이 아니오?” 하니, 곽생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나는 다시, “문장을 익혀서 과거에 응시하려는 것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일찍이 거자(擧子)가 되었으나 이제 그만둔 지가 18년이나 됩니다.” 하였다.

  그때에 통역관 중에 이씨 성을 가진 자가 옆에 있다가 웃으며 말하기를, “점방의 주인이 되어 가지고 어느 여가에 독서를 하겠으며, 그리고 이미 과거에 응시하지를 않는다면 독서를 해서 무엇하려오?” 하니, 곽생이 웃으며 말하기를 “점방 주인이 되었지마는, 점방엔 심부름하는 노복(奴僕)이 있어서 나무 하고 물 긷는 노역(勞役)을 대신하고 있는데, 어찌 독서할 여가가 없겠소. 그리고 독서에는 제각기 의취(意趣)가 있는 것이니, 어찌 꼭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서만 하겠소.” 하였다.

  이씨 통역이 웃으며 말하기를, “농사꾼이 밭을 갈고 공장(工匠)이 기구를 만들고, 장사꾼이 화물을 유통하고, 선비가 독서를 하는 것은 모두 다 먹고 살기 위해서인데, 독서를 하여서 벼슬을 구하지 않는다면 먹을 것이 어디서 생기겠소.” 하니, 곽생이 웃으며 말하기를, “빈부(貧富)는 명(命)이요 귀천은 때가 있습니다. 구한다 해서 반드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버린다 해서 반드시 면하여지는 것도 아닙니다. 부하고 귀한 것이 좋기는 하지만 근심이 또한 따르게 마련이요, 가난하고 천함이 싫기는 하지만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경사(經史)에 두어 애오라지 스스로 즐기고 육신을 부지런히 하는데 어찌 먹을 것을 근심하겠소.” 하였다.

  이씨 통역이 말했다. “인생이 뜻을 얻음에 있어 이 관록(官祿)만한 것이 무엇이겠소. 지위가 높고 봉록이 많아, 몸을 편안히 하고 이름을 세워서, 죽이고 살리는 권리를 갖고 영화와 곤욕(困辱)의 자루를 잡으며, 이웃 마을과 친척들이 겁을 먹고 와서 붙이며 표정을 살피어 아부하기에 앞을 다툴 터이니, 이것이 바로 인생이 능히 할 일이 아니겠소. 그대를 보니 몸을 점방 속에 묻어서 낮고 궂은일을 달게 여기며, 염소를 삶고 밥을 지어서 길가는 나그네의 치다꺼리나 하고, 저울을 달고 수판을 굴려서 도추(刀錐 작은 이익)를 경쟁하고 있으니, 이는 장부(丈夫)로서 천한 행동이요, 포의(布衣)로서 욕되는 것이거늘, 오히려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억지 수작으로 큰소리를 치며, ‘가난하고 비천한 것이 조금도 근심될 것이 없고, 부하고 귀한 것이 족히 구할 것이 못된다.’고 하니, 될 말이오.”

  곽생이 웃으며 말했다. 

  “여자는 나서 부인(婦人)되기를 바라고, 장부는 나서 벼슬하기를 바랍니다. 부인이 되지 않으면 가정을 이룰 수가 없고 벼슬을 하지 않으면 민중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가정을 이루기를 생각하기 때문에 정욕(情慾)을 멀리해서 강포한 데 더럽히지 않고, 민중을 구제할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덕의(德義)를 높이어 위란(危亂)한 데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여자의 정욕을 금하지 않고, 장부의 덕의를 비웃으려 합니까? 때는 이(利)와 불리(不利)가 있고, 명(命)엔 행과 불행이 있습니다. 불리(不利)와 불행이 없는 것은 도(道)입니다. 이제 당신은 높은 지위에 있고 많은 녹봉을 받으니, 진실로 이(利)하고도 행(幸)하지마는, 불리의 이(利)와 불행의 행(幸)을 모른다면 더불어 도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위가 높으면 책임이 무거우니, 책임이 무거우면 몸이 위태롭고, 녹봉이 많으면 쓰임이 많고, 쓰임이 많으면 원망이 모이며, 원망이 모이면 몸이 위태롭습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바로 유쾌하고 즐거울 때는 적고 근심하고 두려운 때는 많은 그것입니다. 이제 내가 낮고 궂은일을 몸소 행하고, 천하고 욕된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곧 때가 불리함이요, 명이 불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불리함도 없고 불행함도 없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증감(增減)이 없는 것이니, 내 어찌 이를 즐거워하지 않겠습니까. 닭이 울면 일어나서 방과 마루를 깨끗이 쓸고 닦으며, 문을 열어 손님들을 맞이합니다. 장사꾼들이 돌아갈 때면, 술과 밥을 정결히 장만하여 그들의 고생을 위로하며 말먹이까지 넉넉히 마련하여 그들의 가는 길을 편리하게 합니다. 비용이 든 대로 돈을 받으니 양측이 공평하며, 그 남는 이윤으로 가족들이 먹고 삽니다. 몸에는 근심과 위태로움이 끊어지고 남들의 원망과 꾸짖음이 없습니다. 초연(超然)히 되는 대로 살매 지극한 즐거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억지 수작으로 큰소리를 치겠습니까?”

  이어서 탄식하며 말했다. “벼슬이란 영화스러울 때도 있고 욕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재주 높은 이는 산야(山野)에 묻혀 있고 돈 많은 이가 직위에 있으니, 요새 세상에 벼슬한다는 것을 나는 몹시 부끄럽게 여깁니다.”

  내가 그의 말을 듣고 무의식중(無意識中)에 칭찬이 튀어나왔다. 그와 마주앉아 더 이야기를 하려 하였으나, 사행이 이미 호각을 불어 행장을 꾸리게 하니 통역들과 비장들이 모두 달려 나갔다. 곽생도 하직의 말이 없이 나가버렸다. 사람을 시켜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였다. 아마 현자(賢者)로서 시문(市門)에 숨어 사는 이인 듯하였다. 수레를 타고 길을 오르면서도 나의 서운한 생각은 무엇을 잃은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