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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이상의 설정, 노예 상태의 자발적 지속

검하객 2017. 4. 6. 13:58

 

 

외부의 강제가 차츰 내면화하는 과정은 인간의 발달 과정과 보조를 같이 한다. 독자적인 정신기능인 초자아가 그 강제를 외부에서 받아들여, 그것을 자신의 명령 속에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이 변화과정을 거쳐야만 어린이는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존재가 된다. 초자아가 강화된 사람은 문명을 적대시하는 존재에서 문명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탈바꿈한다. (프로이트 / 김석회 옮김, 환상의 미래, 문명 속의 불만』, 열린책들, 196)

 

초자아는 자아에게 자아 이상이라고 하는 탈-본능적이고 탈-자기중심적인 모델과 기준을 제공한다. 자아 이상은 어릴 적 부모 표상의 침전물이며, 아이가 그 당시 자기 부모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완전성에 대한 경탄의 표현이다. 즉 자아이상은, 무력한 아이가 보기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처럼 보였던 부모 이미지로부터 유래한다. 성장하면서 선배, 선생, 성공자의 이미지로 자아 이상을 보강한다. 개인과 사회에 있어, 모순과 실패와 오류가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자아는 외부 압력들에 대해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미성숙한 아동의 자아가,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는 듯이 보이는 주위의 주요 대상을 동일시작용을 통해 자아 속으로 흡수함으로써 생긴 심리 내적 실재이다. 그렇다면 초자아는 타자성이 개체 속에 내면화되어 정신의 일부가 된 후에, 개체 전체의 삶을 내면화된 타자의 관점에서 지배하고 명령하는 기능체이다. 이 경우 개인의 삶은 주체성으로 착각되는 내면화된 타자성에 의해 지배되는 꼴이 된다.

지적 수준이 떨어질수록, 자기 사유의 토대가 약할수록 쉽게 외부의 힘을 동일시한다. 권력은 이를 이용하기 위해 구성원들을 우민화하고, 언론은 국민들의 의식을 통제하고 무의식을 조절한다. 선거 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는 후보 대신, 자신의 자아 이상에 가까운 사람에게 투표한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정몽준과 이명박, 박근혜를 찍는 것은, 자아 이상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다.

기득권의 안철수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했고, 그들은 끊임없이 그러한 프레임을 제시할 것이다. 안철수는 똑똑하고 덜 사악한, 성공한 기업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게는 정치 비전이랄 게 보이지 않고, 있어봐야 상투적이거나 관습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언론이 작업을 시작하면  성숙한 자아와 노예 자아, 각성된 시민의식과 체제유지를 노리는 기득권(언론)의 싸움이 치열할 것이다. 이 싸움에서 패배하면 우린 또 지난 10년의 어둠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