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잡지의 매혹

검하객 2018. 3. 11. 16:35


  논리와 고증으로 인해 고갈된 언어의 물줄기, 낯선 잡지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월간 태백"(2018.3. 통권 151호), 춘천에서 간행되는 종합지였다. 아무 부담 없이 몇 편의 글을 읽었다.


  김홍중, <소련의 이안 플레밍, 로만 김의 여러 얼굴>.  Ian Fleming(1908~1964)은 007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이다. (물론 새로 알았음) 필자는 러시아 문학 연구자로, 로만 김은 최근 연구 과정에서 발견한, 1890년대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인 2세로, 러시아의 스파이이자 동양학자이며 소설가였던 로만 김(로만 니콜라예비치, 김기룡, 1899~1967)에 대한 이야기다. 필자의 마지막 발언에 십분 공감한다.  


  "우리는 일제의 통치, 위안부, 한국전쟁 같은 국내에서 일어난 근현대사의 비극들을 많이 접해왔지만 로만 김처럼 국외에서 버어진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한민족 이산의 직접적 피해자들을 일컫는 조선족, 고려인이란 단어는 재미교포와 재일교포에 비해 얼마나 차별적인가? 어쩌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로만 김의 파란만장한 삶은 우리 역사의 일부이고 우리는 그것을 알고 기억해야만 한다. 북한,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 세계 구석구석 우리들의 가려진 역사에는 이산의 상처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이 역사가 드러나고 기억될 때야 우리 민족의 비극이 온전히 끝날 것이다."  (93쪽)


   정한용 (시인)의 <우린 꿈을 믿는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1부>도 흥미로웠다. 음악에는 원래 문외한이고, 미국의 대중문화나 쿠바의 역사 등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어 그런지, 쿠바 이바나 출신 노래꾼들의 그룹이 태어나는 경위에 대한 설명이 신선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과 실패(1953), 체 게바라와의 만남 (1955), 혁명의 성공 (1959), 그리고 쿠바의 변화. 이야기는 그룹 이름과 같은 제목의 영화에까지 이어지는데, 한가로울 때 한 번 볼까! 


  김주희의 <Viva La Vida,  그녀의 인생에 만세를>은,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에 대한 이야기이다. 'Viva La Vida'은 '인생이여 만세'란 뜻인데, 칼로가 죽기 8일 전 자기 그림에 그렇게 적었다고 한다. 끔찍하리만치 비참했던 생애와 그의 삶을 지탱해주었던 그림이 이야기의 골자이다. 나는 처음 알았지만, 퇴근 길 차안에서 들어보니 너무나도 유명한 화가란다. 이렇게 만난 것도 시절 인연이다. 


 

Viva La Vida

화살 맞은 사슴 (1946)


  전윤호의 <인사동, 추억이 정비된 거리>는 시인들이 인사동에서 술 마시는 이야기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풉, 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이렇게 술 마시는 시인들이 있다니, 새삼 놀라운 일이다. 자연스럽게 연상이 강동우에게 미쳐 이 이야기를 했더니, 시단의 소문난  주당들이란다. 하긴 술 마시기로 치면 강동우도 못지 않을 터이다. 아 이렇게 대놓고 술을 마시는 시인들의 세계는 나로부터 얼마나 먼 곳에 있는가! 하지만 한 잔 술이 당기게 하는 데에는 족한지라, 그날 마침 금요일인지라, 집에 돌아와 한라산 한 병을 깔끔하게 비웠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坐脫  (0) 2018.03.14
漁父  (0) 2018.03.14
봄마중  (0) 2018.02.26
지하생활자와 피의자로   (0) 2018.02.25
바로 그 한 줄 (Paterson)  (0) 2018.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