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인생에 대한 별 그림이 없었다. 2지망으로 국문과에 붙었는데, 아마 내 본능이 거기에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학 시절 학문을 선택한 건 100% 나의 의지이고 선택이었다. 고생스러운 시절도 있었고, 지금도 헤매고 있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 내겐 아직도 한두 건의 선택이 남아있을 듯하다. 외형상 가장 먼저 닥칠 것은 또한 진로 문제이다. 종종 학문의 소진을 생각한다. 새로운 지식, 해석의 창출이 불가능해졌을 때, 아니 스스로 더이상 의미 없다고 판단될 때, 뭘 하지? 그런데 길이 보이는 듯하다. 육체로 재화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노동의 삶이다. 아주 정직한 삶의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난 본디 노동자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다. 운명과 인생은 작은 부분에서는 자주 어긋나는 법이다. 본디의 운명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남들 모르게 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