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짐을 풀고, 주변에 뭐가 있나 하고 돌아보다가 2층 식당의 어떤 안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영원은 순간 속에 있고, 모든 우연은 필연이다. 그는 적이 당황하면서, 자기네 2층은 영업한다며 웃었다. 1층 식당이 자주 문을 닫기 때문에, 또 갑자기 눈이 마주쳤는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 말이겠다. 돌아오는 길에 사전 조사 차 올라가 어떤 메뉴가 있는지, 생맥주는 파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이틀 저녁을 잇달아 이 집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왕새우돈까스 맥주 1000, 한라산 21년산 1병. 개업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집이다. 주인 내외는 모두 제주 사람이다. 안주인의 어머니는 고씨이고 아버지는 양씨라니, 제주의 딸인가! 음식 맛? 주인이 호텔 주방에서 18년 동안 일했다고 했지만, 나같은 미맹이야 맛을 알 리가 없다. 하지만 음식에 앞서 그릇도 없이 넘쳐 오는 주인 내외의 미소가 좋고, 옛 한옥의 대청마루의 들창처럼 시원하게 터진 밤바다의 풍경이 아름답다. 제주의 해는 성산에서 떠올라 귀덕 앞바다 너머로 떨어진다. 수평선 위에서 줄지어 눈부신 어선의 집어등이 자기를 더 봐달라고 유혹하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 소리가 거기 더 머물러 있어도 좋다고 말한다. 나는 돈까스 맛은 잘 모른다. 하지만 저물녘 이 집 창가에 앉으면 무언가 끌어당기는 것처럼 밤바다를 우두커니 바라보게 되고, 한라산 21년산을 들이키게 되고, 주인 내외가 조카처럼 동생처럼 느껴지게 된다는 것은 안다. 바람에게도 의지가 있고, 파도도 가끔은 방향을 바꾼다. 내게 밥집이란 바람이 자기의지로 찾아오고, 파도가 방향을 돌려 마음을 보내는 곳이다. 언젠가 다시 제주에 오면 한림에서 머물 텐데, 그때도 그 시간 그 자리에서 그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밤바다를 보게 되면, 그리고 사이사이 주인장과 말을 섞게 되면 좋겠다.
벽면엔 에곤 쉴레의 그림 몇 점, 창밖은 제주에서도 맑은 한림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