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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공포

검하객 2019. 10. 16. 12:35

  

  어차피 삶은 사라지는, 덧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감정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사적으로 어떤 의미나 가치에 매달린다. 끝없이 펼쳐진 수심을 알 수 없는 허무의 바다 위에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 통나무 조각을 부여잡거나 뗏목을 젓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조리한 일들이 횡행한다. 이들의 삶은 역사니, 사회니, 도덕이니, 경제니 하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한 이름들이 곧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부여잡고 있는 가치거나 의미이다. 그런데 이 싸움이 하도 격렬하여, 사람들은 그만 자기가 떠있는 허무의 바다를 잊기도 한다. 허무에 빠질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허무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가진 게 게 많거나 어떤 우상에 기대고 있어, 자기들의 처지를 돌아보지 못한다. 황교안과 나경원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이다. 맘 같아선 머리를 눌러서라도 끝없는 바다 속으로 밀어놓고 싶다. 마음속에서 증오와 분노가 끝없이 용솟음치니, 내 수행은 진작에 실패다. 이 몇 년 난 그들이 다시 돌아오면 어떻게 하지, 라는 불안에서 잠시도 벗어난 적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끔찍한 상상은, 공포와 불안은 나로 하여금 허무를 잊게 해준다. (다시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 어떡하지는 불안이고, 그런 상황을 상상했을 때 나타나는 심리는 공포이다.) 하지만 난 그런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의 허무와 마주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양당제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아니면 한국당이라는 것이다. 자유망국당이 목숨 걸로 선거구제 개편을 반대하는 것은, 그러한 프레임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면 안 되는 끔찍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그 프레임을 깨야 한다. 자유망국당은 이제 버려야 하고, 추후 민주당 또한 그런 운명에 놓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