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고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감동이 사라진, 갈대들이 제 자리에서 춤을 추는 겨울 강가에서 너를 생각한다. V자 편대를 지어 비행하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다가, 왼줄 네 번째 삐져 나온 놈에게 마음이 연처럼 걸린다. 살다보면 그런 녀석들이 있지, 줄 속에서 줄을 보려 머리를 내밀고, 어둠이 친숙해지면 더 짙은 어둠을 찾는, 새 기계의 내면이 궁금해 기어이 헌 것으로 만들고 마는. 이제는 잃어버린 실수와 상처, 그리고 끝없는 피부 재생의 시절. 그 많던 흉터들도 어딘가에 묻혀버려 기억마저 인멸한, 시작과 끝에 대한 관념이 사라진 겨울 강가에서 너를 생각한다. 상처는 상처대로, 흉터는 흉터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혼자 되뇌이면서 걸음을 떼지 못하는 갈대숲의 슬픈 춤사위에 몸을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