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물안개 속에서 아직 단꿈에 젖어있는 물고기의 잠꼬대를 듣는다는 환상은 깨졌다. 8시 40분, 우포늪 순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아침을 먹지 않아 자신이 없었다. 기온도 영하 4도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춥다. 관리 사무실 노인분들의 호의로 커피를 마시며, 휴게실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데 9시 20분이 되도록 주인은 출근하지 않는다. 따스한 커피 한 잔에 뱃속이 조금 따뜻해지자 용기가 나서 발걸음을 들여놓다가,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추위와 주림은 오랫동안 꿈꿔온 우포 상면의 감동을 방해할 것이다. 어차피 늦어진 거 조금 늦어지더라도 밥을 먹고 시작하자 마음 먹고 차를 돌려 나오는데, 문 연 식당 하나가 눈에 띈다. 우렁된장찌개를 주문했다. 안사장님은 대구 출신으로, 마을에서 젖소를 키우다가 30년 전부터 이 자리에서 밥장사를 시작했단다. 갓 지은 쌀밥에 된장찌개를 비벼 배를 채우자 전의가 뜨거워졌다. 전쟁이든 여행이든 사랑이든, 보급이 최우선이다. 100리 길을 가는 사람은 하루 양식을, 천 리 길을 떠나는 사람은 석달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는데, 창녕에 와서 이른 아침 우포늪 순례에 나서는 자는 우포늪식당에서 먼저 배를 채워야 한다. 우렁된장찌개 한 긋으로 3시간 20분에 걸쳐 9.7km에 달하는 우포늪 생명길 순례를 잘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