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르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절망은 길들여지지 않는,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의 숙명이다. 김수영의 절망은 어둠을 어둠으로 감각하고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희망은 영원히 구원을 불러오지 못한다, 그것은 그치지 않는 절망 속에서만 도래할 수 있는, 희미한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