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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 시 제 12호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서)

검하객 2020. 12. 28. 10:28

  때 묻은 빨래조각이 한 뭉텅이 공중으로 날라 떨어진

다. 그것은 흰 비둘기의 떼다. 이 손바닥만한 한조각 하

늘 저편에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다는 선전이다. 한

무더기 비둘기의 떼가 깃에 묻은 때를 씻는다. 이 손바

닥만한 하늘 이편에 방망이로 흰 비둘기의 떼를 때려

죽이는 불결한 전쟁이 시작된다. 공기에 숯검정이가 지

저분하게 묻으면 흰 비둘기의 떼는 또 한 번 이 손바닥

만한 하늘 저편으로 날아간다. 

 

  비둘기 떼를 보고 빨래를 떠올린 걸까, 아님 그 반대일까? 빨래는 때가 묻어있고 조각나있다. 하늘은 손바닥만큼이나 작은데, 그나마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어져 있다. 나눌 것도 없는데 나뉘어져 있는 하늘, 세상, 희망과 절망, 평화와 전쟁, 질병과 건강, 저승과 이승, 그리고 죽음과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