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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연

검하객 2022. 2. 16. 17:50

  네 시간이 넘도록 둘이서만 술을 마셨으니 그것만으로도 범상한 인연은 아닐 터이나, 피차에 할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그는 침묵하며 자기 안으로 가라앉는 바다이고, 나는 안기는 것을 품어가며 의지 없이 흘러가는 강물인데, 이런 어쩌나 흐르다보니 그만 바다에 닿고 말았다. 이런 물러서기도 어렵게 되었겠다. 물러설 수 있다 해도, 만났어야 헤어지자 할 터이고, 주고받은 게 있어야 거래를 마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모두 고향을 잃고 떠도는 우울한 나그네였으며, 낯선 땅에 와서 다리에 묶여 울부짖는 50마리 낙타 중의 둘이었다. 분위기는 내내 어색했고, 대화는 시종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술만 마셨다. 9시가 되어 가게가 문을 닫자, 그는 별 인사도 없이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넜고, 난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었다. 

 

  2월 11일, 정자역 3번출구, 사랑방, 두 주전자 막걸리와 꼬막, 그리고 맥주 두세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