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불행은 시인의 행운이라, 흥망을 그려냄에 구절 더욱 공교롭네.
國家不幸詩家幸, 賦到滄桑句便工.
사회가 혼탁하고 세상이 어지러워야 시인의 일이 많아진다는 역설이다.
이 구절은 청나라 때 성령파(性靈派) 3대가 중의 하나로 꼽히는 趙翼(1727~1814)이 元好問(1190~1257)의 시를 읽고 지은 시의 일부이다. 원호문은 관리를 지낸 금나라가 원나라에 멸망하자, 산동성 聊城 등지에서 구금 생활을 했다. 이후 耶律楚材의 추천을 받고, 출사를 거부하던 끝에 관직에 나아간다. 시 제목이 「題遺山詩」이니, 시로 지은 시 독후감인 셈이다.
身閱興亡浩劫空
兩朝文獻一衰翁
無官未害餐周粟
有史深愁失楚弓
行殿幽蘭悲夜火
故都喬木泣秋風
國家不幸詩家幸
賦到滄桑句便工
고국 금의 멸망을 겪고, 두 왕조의 문헌을 뒤적이는 사이 몸은 늙어버렸다.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자 했지만, 금나라 사적이 멸실되는 것을 볼 수 없어 출사하였다. 궁궐에서 숙직하다가 슬픔에 젖기도 하고, 가을바람을 맞는 옛 시절 나무에 눈물도 흘린다. 세상의 흥망을 그린 그의 시는 구절 구절이 매우 공교로우니, 국가가 불행을 겪은 것이 외려 시인에겐 행운이었다는 말이다.
박근혜가 대통령 하던 시절 참 많은 시를 지었다. 끊임없이 분노했고, 공포에 시달렸는데, 그런 격정들이 언어로 마구 쏟아져 나왔다. 지금 박근혜만큼이나 무식하면서도 엄청난 기득권을 배경으로 가진 윤석열과 그 일파, 대놓고 그를 내세우는 보수 언론들의 행태 속에서 나는 또 끔찍한 공포에 시달린다. 나는 시를 짓고 싶지 않다. 공교로운 시는 더더욱 짓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씨 뿌리고 나무를 심으며 평화롭게 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