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귄의 소설 "어둠의 왼손" (1969)의 주제는 '우정'이다. 나(겐리 아이)는 우정의 표시로 외계의 행성에 '혼자' 파견되었다. 이 행성에서 유일하게 나(의 뜻)을 알아준 에스트라벤은 그 혐의로 추방된다. 에스트라벤은 원수간의 사랑과 우정의 표지로, 방랑자의 운명을 받고 태어난 사람이다. 뒤이어 나도 추방된다. 나는 오르고린에서 강제 수용소게 갇힌다. 에스트라벤은 나를 구출한다. 두 사람은 81일 동안 고브린 빙하를 지나는 여행을 하며 서로를 이해한다. 두 사람은 모두 추방방된 이방인이었으며, 환경은 가혹했고, 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에 에스트라벤은 겐리 아이의 뜻을 이루어주기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한다. 이렇게 해서 에큐멘과 행성 겨울 사이의 우정도 싹트기 시작한다. 이 소설에서 시공간은 그저 장치일 뿐이다. 작가는 전쟁과 차별이 없는 세계를 그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삶에는 우정만이 있을 뿐인데, 이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가혹한 배제와 폭력이 일어나곤 한다.
어슐러 K. 르귄, 서정록 옮김, 어둠의 왼손, 시공사, 2009
이 빙하지대에서 우리는 외톨이였고 격리되어 있었고 그 역시 그의 친구와 사회로부터 홀로 떨어져 있었다. 나의 존재를 지지해 줄 다른 게센인들의충만한 세계는 없었다. 우리는 마침내 서로 평등해졌다. 똑같이 외계인이고 혼자이고 외톨이였다.(297)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속삭였다. 지금 우리의 우정을 확신하게 된 것은 조금 전에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한 성적 긴장 덕분이라는 것을! 추방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우정이었으며, 그간의 험난한 여행 속에서 확인한 우정을 이제는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사이의 차이점에서 생긴 것이지 유사함이나 닮음에서 싹튼 사랑은 아니었다. 어쨌든 사랑은 우리를 잇는 단 하나의 다리였다. (315,6)
길고 긴 대장정의 나날 동안 우리는 집도 없고 사람도 없는 황량함 속에서 보내야 했다. 바위와 얼음, 스키 그리고 침묵만이 유일한 길동무였다. 81일 동안, 우리 두 사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345)
우리는 우거진 나무 아래에 있는 구덩이에서 눈을 맞으며 몸을 움츠렸다. 우리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몸을 가능한 한 밀착시켰다. 점심 때쯤 에스트라벤은 잠깐 동안 눈을 붙였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배가 고프고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약간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그가 전에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해 내려고 애쓰며 그에게 몸을 기댔다.
‘둘은 하나이다. 삶과 죽음은 나란히 누워있으니 …’
그것은 아마도 빙하지대의 텐트 속이었던 것 같다. 몸을 의지할 만한 곳도, 먹을 것도, 휴식을 취할 곳도 없었다. 오직 우정만이 있을 뿐,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끝나가고 있다. (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