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환상을 잘 지어내는가! 누가 요마를 잘 그려내는가? 누가 멀고 깊은 장소를 잘 설정하는가? 누가 기이한 사건을 펼쳐내는가? 이런 게 관건이란 말씀. 소설가는, 이야기꾼은 신이나 부처를 말하지 않는다. 저 배경에 희미하게 둘 뿐.
글을 지어도 환상이 아니면 문장이 되지 않고, 환상을 지어도 지극하지 않으면 환상이 되지 못한다. 이에 천하에 지극히 환상적인 일이 곧 지극히 진실한 일임을 알게 된다. 지극한 환상의 이치가 곧 지극한 진실의 이치인 셈이다. 그러므로 진짜를 말함은 환상을 말함만 못하고, 부처를 이야기하는 건 요마를 이야기함만 못하다. 요마는 다른 게 아니라 곧 ‘나’이다. 내가 부처가 되려는데, 부처가 못되면 요마가 된다.
文不幻不文, 幻不極不幻. 是知天下極幻之事, 乃極眞之事. 極幻之理, 乃極眞之理. 故言眞不如言幻, 言佛不如言魔. 魔非他, 卽我也. 我化爲佛, 未佛卽魔.
원우령(袁于令, 1592~1674), 「서유기제사(西遊記題詞)」
환상이 지극하면 진실이 되고, 진실이 지극하면 신령스럽다. 幻極而眞, 眞極而神.
김소행(金紹行, 1765~1859) 『삼한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