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곽자기(南郭子綦)가 궤안에 기대 앉아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는데,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게 마치 아내라도 잃은 듯했다.
안성자유(顏成子游)가 앞에서 모시고 있다가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몸은 마른 나무 같고, 마음은 식은 재처럼 보이십니다! 지금 궤안에 기대신 분은 예전 궤안에 기대셨던 분이 아닙니다.”
자기가 말했다.
“언(偃)아, 질문도 훌륭하구나! 지금 나는 나를 잃고 있었는데[吾喪我 → 我는 뒤에 나오는 바 百骸九竅六藏의 지배를 받는, 與物相刃相靡하는, 언어의 편견에 갇혀 是非에 휘말리는, 조삼모사에 속아 좋아하는 원숭이 같은 나] 너는 그것을 알았느냐? 너는 인뢰(人籟)는 들었어도 지뢰(地籟)를 듣지 못했을 테고, 지뢰는 들어보았다 해도 천뢰(天籟)는 들어보지 못했겠지!”
南郭子綦隱机而坐, 仰天而噓, 荅焉似喪其耦. 顏成子游立侍乎前, 曰:"何居乎? 形固可使如槁木, 而心固可使如死灰乎? 今之隱机者, 非昔之隱机者也?" 子綦曰:"偃, 不亦善乎, 而問之也! 今者吾喪我, 汝知之乎? 女聞人籟而未聞地籟, 女聞地籟而未聞天籟夫!" (『장자』, 「제물론(齊物論)」
송욱(宋旭)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자다가 해가 떠올라서야 겨우 잠에서 깨었다. 누워서 들으니, 솔개가 울고 까치가 지저귀며, 수레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시끄러우며, 울 밑에서는 절구 소리가 나고 부엌에서는 그릇 씻는 소리가 나며, 늙은이의 부르는 소리와 어린애의 웃음소리, 남녀 종들의 꾸짖는 소리와 기침하는 소리 등 문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분별하지 못할 것이 없건만 유독 자신의 소리만은 들리지 않았다.
이에 몽롱한 가운데 중얼거리기를,
“집안 식구는 모두 다 있는데 나만 어찌하여 없는가?”
하며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저고리와 바지는 다 횃대에 놓여 있고 갓은 벽에 걸려 있고 띠는 횃대 끝에 걸려 있으며, 책들은 책상 위에 놓여 있고, 거문고는 뉘어져 있고 가야금은 세워져 있으며, 거미줄은 들보에 얽혀 있고, 쇠파리는 창문에 붙어 있다. 무릇 방 안의 물건치고 하나도 없는 것이 없는데 유독 자기만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급히 일어서서 제가 자던 곳을 살펴보니 베개를 남쪽으로 하여 요가 깔려 있으며 이불은 그 속이 드러나 있었다. 이에 ‘송욱이 미쳐서 발가벗은 몸으로 집을 나갔구나!’라고 생각하고는 매우 슬퍼하고 불쌍히 여겼다. 한편으로 나무라기도 하고 한편으론 비웃기도 하다가, 마침내 의관(衣冠)을 안고서 그에게 찾아가 옷을 입혀 주려고 온 길을 다 찾아다녔으나 송욱은 보이지 않았다.
宋旭醉宿, 朝日乃醒. 臥而聽之, 鳶嘶鵲吠, 車馬喧囂, 杵嗚籬下, 滌器廚中. 老幼叫笑, 婢僕叱咳. 凡戶外之事, 莫不辨之, 獨無其聲. 乃語矇矓曰, 家人俱在, 我何獨無. 周目而視, 上衣在楎, 下衣在椸, 笠掛其壁, 帶懸椸頭. 書帙在案, 琴橫瑟立. 蛛絲縈樑, 蒼蠅附牖. 凡室中之物, 莫不俱在, 獨不自見. 急起而立, 視其寢處, 南枕而席衾, 見其裡. 於是謂, 旭發狂, 裸體而去. 甚悲憐之, 且罵且笑. 遂抱其衣冠, 欲往衣之, 遍求諸道, 不見宋旭. … (『연암집』 별집 권 7, 종북소선, 「念齋記」)
신문을 훑어가던 그는 가볍게 소리를 질렀다. 광고란에 자기의 사진이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이 사람을 찾습니다. 그 여름날에 우리가 더불어 받았던 계시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자신을 찾기 위하여, 우리와 만나기 위하여. 당신이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랬었구나, 하고 그는 기쁨에 숨이 막히면서 중얼거렸다. 그랬었구나, 하고 그는 거듭 중얼거렸다. 그는 이 광고를 낸 사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당신이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라구. 아무렴, 그는 너무나 벅차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최인훈, 『최인훈전집 3 서유기』, 문학과지성사, 2005, 15, 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