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우키포스(Leukippos, BC 440~?)와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BC 460~380) 두 사람이 고대 원자론의 장엄한 대성당을 짓습니다. 데모크리토스 체계의 기본 발상은 아주 단순합니다. 우주 전체는 끝없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속에서 무수한 원자들이 돌아다닙니다. 공간은 한계가 없습니다. 위도 아래도 없습니다. 중심도 경계도 없죠. 원자들은 모양 외에는 어떤 성질도 갖지 않습니다. 무게도 색도 맛도 없습니다. 원자는 나눌 수 없습니다. 원자들은 공간 속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다가 서로 부딪칩니다. 서로 붙기도 하고 서로 밀치고 당기기도 합니다. 비슷한 원자들이 서로 끌어당겨 모입니다. 이것이 세계의 짜임입니다. 이것이 실재입니다. 그밖의 모든 것은 원자의 이러한 운동과 조합이 무작위로 우연히 만들어낸 부산물일 뿐입니다. 세계를 이루는 무한히 다양한 물질들도 오로지 원자의 이러한 조합에서 파생된 것이죠. 원자들의 끝없는 춤에는 완결도 목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처럼 무궁한 시간에 걸친 무작위의 우연한 선택의 산물입니다. 우리의 삶은 원자들의 조합이며, 우리의 희망과 우리의 감정은 원자들의 조합으로 형성된 언어로 쓰여 있습니다. 믿을 수 없으리만치 단순하고 믿을 수 없으리만치 강력한 비전입니다. 바로 이 비전 위에 앞으로 문명의 지식이 세워질 것입니다. (카를로 로벨리 앞의 책, 23-25쪽)
여기서 김성탄이 수호전의 인물 개성 원리로 설명한 因緣生法, 因緣和合論이 떠오른 건 뜬금없는 건가?
"요즘 사람들은 인연이 법을 낳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인연이 법을 낳음을 알지 못하니 忠을 알지 못한다. 忠도 알지 못하니 恕를 어찌 알리요? 이런 사람은 두 아이를 낳고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아내에게 “눈도 같고 코도 같고 입도 같은데, 큰애는 작은애가 아니고, 작은애는 큰애가 아니니 무슨 까닭이요?” 한다. 실은 자기 아내와 함께 지어낸 것임을 알지 못한다. 남편은 자식을 알지 못하고 아내에게 물은 것이다. 부부의 인연이 자식을 낳은 것이다. 천하의 忠이란 부부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천하의 충이란 그 자식의 얼굴 이상의 것이 없다. 그 이치를 살펴 알아서 천하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천하 부부의 일을 살핀다면, 저 만 사람의 얼굴이 같지 않은 것이 어찌 매우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忠恕란 만물을 헤아리는 斗斛이요, 因緣生法이란 세계를 마름하는 刀尺인 것이다. 시내암은 왼손으로 이 斗斛을 잡고, 오른손으로 이 刀尺을 쥐어 겨우 108인의 성정과 기질과 형상과 성구를 서술한 것이니, 그 일단만을 작게 시험한 것이다. 今世之人吾知之,是先不知因緣生法. 不知因緣生法,則不知忠. 不知忠,烏知恕哉. 是人生二子而不能自解也. 謂其妻曰:眉猶眉也,目猶目也,鼻猶鼻,口猶口,而大兒非小兒,小兒非大兒者何故. 而不自知實與其妻親造作之也. 夫不知子,問之妻,夫妻因緣,是生其子. 天下之忠,無有過於夫妻之事者;天下之忠,無有過於其子之面者. 審知其理,而覩天下人之面,察天下夫妻之事,彼萬面不同,豈不甚宜哉. 忠恕,量萬物之斗斛也. 因緣生法,裁世界之刀尺也. 施耐庵左手握如是斗斛,右手持如是刀尺,而僅乃敘一百八人之性情、氣質、形狀、聲口者,是猶小試其端也." (〈序 3〉)
김성탄은 이 인연생법을 좀도둑 時遷의 인물 형상을 설명하면서 다시 원용한다. (55회)
김성탄이 보았을 때 모든 존재는 因緣의 소산, 즉 緣起이다. 똑같은 부부가 낳은 아이들이라도 그 모습은 제각각이니, 그것은 아이가 태어나는 조건과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因緣은 어떤 경우라도 같은 것이 없고, 따라서 그 인연을 따라 생겨나는 모든 존재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유일무이한 개성의 소유자임은 천하의 상리이다. 이를 깨우친 사람이라면 소설의 인물들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단순하게, 格物은 사물 또는 세상의 이치를 통찰한다는 뜻이고, 忠恕는 자신의 진심을 외부 세계에 미루어 적용한다는 뜻이니 인식론의 범주에 속한다. 이에 비해 因緣生法은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논리이니 존재론이라 할 수 있다. 忠恕의 이성으로 따져보거나, 因緣法이라는 존재 생성의 원리로 보거나,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김성탄이 보았을 때 시내암은 이 이치를 《수호전》의 인물 창조에 제대로 적용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