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벅(1892~1971)의 "The Great Earth 大地" (1931, / 장왕록 옮김, 삼중당, 1982)는, “왕룽이 장가 들던 날.”이라는 문장으로 출발한다. 왕룽은 설렜고, 그의 아버지는 이런 날이면 언제나 해 온 버릇대로 향을 사서 성황당에 뫼신 지신님 앞에 피우리라 생각하였다.(12) 왕룽은 성내 황부자집에 아내를 데릴러 갔다. 왕룽의 아내가 될 사람은 산동 출신으로 어려서 황부자집에 팔렸다. 돌아오는 길에 신랑 신부는 지신묘 앞에 선다. 지신에 대한 태도는, 대지의 품에서 대지의 젖을 먹고 사는 농민들의 대지에 대한 마음을 아주 재치 있게 보여준다.
“성황당 안엔 그 근처의 흙으로 만든 한 쌍의 거룩한 지신님을 뫼셨다. 남신과 여신 두 검님이시다. 지신님은 붉고 누런 종이로 지은 옷을 입으시고 그중에도 남신은 엉성하게나마 수염까지 드리웠다. 왕룽의 아버지는 해마다 붉은 종이를 오려서 정성껏 옷을 지어 입히지만 비와 눈이 들이치고 여름엔 햇볕이 내리쬐어 그 고운 옷도 얼마 가지 않았다.” … 한동안 사나이와 여인은 밭 가운데 뫼신 지신님 앞에 가즈런히 서 있었다. (27,8)
계속되는 가뭄. “어떤 날 그는 굶주림에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들 가운데 있는 성황당에 가서 거기 태연하게 여신님과 짝지어 앉아 있는 지신님의 얼굴에 마음껏 침을 뱉아 주었다.”(84)
고향을 떠나 남방으로 향하는 부부. “그들은 잠자코 지신님 앞을 지나갔다. 지신님도 그들을 본체만체했다.”(98)
귀향. “왕룽은 들 가운데 뫼신 지신님이 생각나서 성 안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여다보았다. 지신님의 몰골은 말도 못할 형편이었다. 흙으로 만든 몸뚱이가 얼굴서부터 비에 씻기고 종이옷은 찢어져서 발가숭이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흉년에 아무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왕룽은 그 몰골이 고소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섰다가 일을 저지른 아이를 꾸짖는 어조로 언성을 돋우었다. ‘사람을 못 살게 한 지신님은 그 꼴이 마땅하다.’” (153)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1962)에서 김약국의 아내 한실댁은 성품이 매우 온후한 사람이지만, 무정한 남편 때문에 마음이 건조해졌고, 여러 딸들의 사고로 정신이 어지러운 사람이다. 셋째딸 용란 집에 가서, 아편쟁이 남편 연학에게 맞아 온몸이 엉망이 된 딸을 보고, 사위와 실랑이를 벌인 뒤 산란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한실댁은 허방을 짚으며 간다.
집 앞 가까이까지 왔을 때 사방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뒷산에서 부엉이가 울고 있었다. 집 앞의 느티나무 가지가 바람에 소리를 내고 있었다. 느티나무 둘레에 친 새끼줄에 감긴 흰종이가 어둠 속에서 팔랑거린다. 한실댁은 와락 달겨들어 그 새끼줄을 잡아뜯는다.
"이 썩은 고목나무얏! 이날까지 손발이 자자지게 빌었건만 무슨 영검이 있었노? 이자 물밥 천신도 못할 줄 알아라."
한실댁은 주먹으로 나무를 치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는 미친 듯 집에서 뛰어나와 느티나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목신령님 살려주시이소. 죽을 죄를 졌습네다. 인간이 미련하고 불민하여 신령님 무서운 줄 모르고 죄를 저질렀십네다. 불쌍한 자식들 명철하신 신령님께서 애언하게 여기시어 보살피 주시이소. 죄가 있으믄 이 어미가 받겄십니다."
한실댁이 땅 위에 머리를 조아리고 쉴새없이 절을 한다. (삼성출판사 한국현대문학전집 20, 1982, 355, 3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