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物 (『화담집』 권 1)
존재는 오고 와서 다하지 않고 오니 有物來來不盡來
다 왔다 싶었는데 또 어디서 오는구나 來纔盡處又從來
저로부터 오고 오니 시원이 따로 없고 來來本自來無始
너희는 가장 먼저 어디서 온 것이냐 爲問君初何所來
존재는 가고 가서 다하지 않고 가니 有物歸歸不盡歸
다 갔다 싶었는데 아직도 남아 있네 歸纔盡處未曾歸
아무리 가고 가도 끝나지 아니 하니 歸歸到底歸無了
너흰 대체 어디로 돌아가는 것이냐 爲問君從何所歸
화담은 물리학을 했어도 좋았을 것인데, 그런 학문의 전통이 조성되지 않았다. 모든 지성이 윤리학에 매몰된 것은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었다. 둘째 시 4구의 從에는 'toward'의 뜻도 있다. 우리는, 사물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 당장 먹고 사는 데는 쓸모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한편 질문은 쓸모 없을수록 쓸모가 많다.
블로흐는 1960년에 지은 The Principle of Hope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괄호 안은 영역된 구절이다. 블로흐는 인간의 심리에 있어 '아직 의식되지 않은'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자신에게 질문한 것이다. 초점이 사람-우리에게 맞춰져 있다.
우린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며, 무엇이 우리를 맞이하는가?
많은 사람은 그저 혼란을 느끼리라. 토대는 흔들리고, 그들은 왜, 무엇으로 혼란을 느끼지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불안의 상태이다. 그것이 분명해지면 공포가 된다. ( Who are we? Where do we come from? Where are we going? What are we waiting for? What awaits us? Many only feel confused. The ground shakes, they do not know why and with what. Theirs is a state of anxiety; if it becomes more definite, then it is fear.)
독일의 젊은 철학자의 책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마르쿠스 가브리엘, 김희상 옮김, , 열린책들, 2017)에는 아래 구절이 있다. 의심의 강에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질문의 숲에 새들이 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대체 무엇인가?” 인류가 품은 이런 물음에 무언가 진정 새로운 것을 말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은 아마도 순박해 보이리라.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이 물음은 그 자체로 순수하다. 이런 물음은 드물지 않게 아이들이 던진다. 그리고 바라건대 그 아이들이 이런 물음을 품는 일을 결코 멈추지 말아 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