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으로 가는 차 안에서, 치악산 곧은재 길을 걸으며, 그리고 돌아오면서, 한 학기 수업에 참여했던 수강생 12명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각각 한 곡의 시조에 담았다. 이건 내가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이고, 내게 있어 시의 한 용도이다. 무엇인가 특별하여 시를 짓는 게 아니다. 시를 지었기에 그 순간이, 그 사람이, 그 풍경이 특별해지는 것이다. 시는 애정과 관심과 호감의 한 표현이다. 주로 치악산을 오가는 과정에서 지어졌기에 치악십이곡이라 이름 부쳤다. 치악회인십이곡(雉岳懷人十二曲), 시절인연십이곡이라 할 수도 있다. 마음 같아선 여기에 곡을 부치고, 거문고를 타며 창을 하고 싶다. 부디 모두 좋은 공부를 하고, 건강하기 살기를 바란다!
서곡
배워 때로 익힌다면 기쁘지 아니한가
먼 데서 벗이 오면 또한 아니 즐거운가
우리의 시절인연을 못내 겨워하노라
1
매화의 만 섬 향기 나비로 피어나고
선낭(仙娘)의 천 년 곡조 강물로 흘러간다
그대와 아양지계(峨洋之契)를 맺어볼 수 있을까
2
장백산 천지에선 큰 범이 목 축이고
장부의 가슴에선 고래가 물을 뿜네
두어라 그 밤 그 일을 잊을 수가 있을까
3
새 생명 보듬을 땐 보슬비 되었다가
장난기 일어나면 여우비로 변한다네
아모타 언제 내린들 제때 단비 아니랴
4
소쩍새 울음소리 숲 더욱 적막하고
반딧불이 몸빛에 밤 외려 캄캄하다
세상에 그대 아니면 깊이 어디 있을까
5
知者는 不言이란 선인 뜻 깊이 새겨
폭포수 변설 강론 침묵 속에 감추었네
보시라 그 둑 터지면 장강 물길 생기리
6
有無는 한 가지요 늦고 이름 둘 아니니
관대한 그의 시간 무엇에 갇힐 소냐
石河子 拈花 미소를 미워할 이 누구리
7
동토의 어떤 인연 선재(善財)를 이끌었나
낮에는 글을 읽고 밤에는 일을 했네
어느 날 美酒 三百杯 지난 사연 들을까
8
步虛의 걸음걸음 천상의 선관이요
붓 잡은 손목 맵씨 한림의 학사로다
뱃속에 가득한 먹물 아낌없이 뿌리라
(뒷날의 문장 성취를 어느 누가 알리오)
9
江西의 頓悟法門 예 듣고 이제 보니
쾌활한 마음 공부 그 조상 알겠도다
군자여 오늘 여기서 象山 계보 이으라
10
먼 옛날 떠나온 곳 백 년 전 돌아갔고
백 년 전 떠나간 곳 이제사 돌아왔네
나그네 세상 어딘들 내 고향이 아니랴
11
맛이 곧 부처라는 화두를 수행하며
허공에 글을 새겨 법열(法悅)의 시를 쓰네
동짓날 저 글 모두가 눈이 되어 내리리
12
그대의 공책에는 무자시(無字詩) 빼곡하고
내 방 한 곁에는 무현금(無絃琴) 놓였으니
진작에 우리 두 사람 시우(詩友)인가 하노라
결곡
제각각 뜻을 좇아 길 위에 나섰는데
객점(客店)의 밤 연회가 성대히 펼쳐졌네
동녘에 해가 떠오니 일로순풍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