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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고향의 표상, 비술나무

검하객 2023. 8. 5. 12:24

 비술나무는 느릅나무의 일종이다. 한자로는 유수이다. 중국 동북 조선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나무 중 하나이다. 비술나무는 하얼빈 중앙대가의 가로수로도 심어져 있고, 안중근이 의거 계획을 점검했던 자오린 공원에도 100년 넘게 자라고 있다. 박옥남 소설에서 비술나무가 나오는 몇 장면이다. 
 
  비술나무 가지에 달아맨 낡은 확성기에선 흘러간 옛 노래가 시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 동네」)
 
  마을 복판에 자리잡은 늙은 비술나무 둥치에 한문으로 쓴 광고장 하나가 나붙어있는 것이 먼발치에서 보였다. 써 붙인 지 꽤 오래 되었는지 누렇게 색이 바랜 바탕지의 한쪽 귀가 떨어져 바람에 너풀거리고 있었다.
  “본촌의 계월네가 내여놓은 논을 촌에서 회수했음. 이 토지의 사용권을 다시 양도하려 하는데 맡아볼 의향이 있는 분은 신청을 해주시오. 외지인에게도 양동는 가능하지만 마을의 치안과 관리를 위해 조선족에게만 한함. 촌장 : 김봉규” (「썬딕이」)
 
  우리 아버지는 학교를 관리하는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초옥으로 된 교사였지만 해마다 바람벽을 깨끗이 수건하는 걸 잊지 않았고 학교 터 주위에 비술나무 외에도 오얏나무같은 과일나무를 옮겨 심어 봄이면 학교 뜰안은 마치 화원같았다. 교실 창턱 밑에 관상용 비술나무를 심어놓고 손수 수관을 다듬던 아버지의 뒤모습을 나는 교실 창 너머로 수없이 보아왔었다.
  운동장 주위에 심었던 비술나무들은 그대로 서있었으나 오얏나무들은 모두 없어졌고 운동장 남쪽에 줄느런히 심었던 락엽송은 더러는 찍혀 나가고 ….
숲도 그 숲이고 자리도 그 자리이건만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사람은 유독 나 홀로다. 나는 비술나무 둥치를 껴안아 보았다. 웃가지들은 후에 돋은 가지이겠지만 이 둥치와 둥치를 둘러싸고 있는 수피는 엄연히 그때 그 수피이고 그 둥치일 것이다. 나는 친구의 손을 매만지듯 매 그루의 비술나무 둥치들을 일일이 매만져보고 그러안아보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다니며 뛰여놀던 그때는 어른들의 신다리만큼씩 굵었던 나무둥치가 어언 한아름이 되도록 자라 있었다. 둥치는 굵어졌지만 나무는 늙어있었다. 사람들은 다 떠났지만 나무뿌리는 더 깊이 땅속으로 뻗었을 것이다. 늙은 농군의 손등처럼 터실터실 갈라진 수피를 매만지는 내 눈에서 또다시 물기가 괴여올랐다. 소리를 질러보고 싶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 흘러가는 강물처럼 붙잡을 겨를도 없이 흘러가버린 세월이 아쉽고 그립고 원망스러웠다. (「고향」) 
 
  아래는 자오린 공원 120살 비술나무 아래서 한담을 나누고 있는 강동우(관동가톨릭대, 우), 이용근(흑룡강대) 선생이다. 아래는 두 사람에게 그늘을 드리워주고 말없이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비술나무 노선생이다. 우리는 아침에 통하의 송화강 가를 산책했고, 오후에 하얼빈으로 돌아와 안중근 기념관을 둘러보고, 중앙대가와 송화강대교를 걸은 뒤, 이 비술나무 아래서 지친 발걸음을, 낡아가는 인생을 멈춰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