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현재의 역사이다. 같은 논리로, 역사는 과거의 언론이다."
언론을 통제하는 것, 과거를 장악하는 것은 전체주의 독재의 출발이며 도착이다.
예브게이 자마찐의 "우리들"(1920)과 조지 오웰의 "1984(1948)은 사상과 감정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인권을 묵살되고 민주가 유린되는 전체주의 독재 사회의 끔찍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우리들"에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찬양과 칭송, 그리고 복종의 자유만 주어질 뿐이다. 모든 사항은 만장일치로 의결되며, 어떠한 이견이나 반대는 처형으로 이어진다.
"1984"에서 당은 당은 끊임없이 현재에 맞춰 과거를 바꿔 기록하고 그렇게 기억하게 한다. 다르게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으며, 저항할 경우 잔인한 고문이 가해져 자발적으로 당에 복속하게 한다.
두 소설이 보여주는 전체주의의 길을 황소개구리가 대놓고 닦고 있다. 언론을 장악하여 의문과 비판의 입에 재갈을 채우려 하더니, 기어이 역사 서술의 독점을 시도하였다. 정당한 의문과 비판에는 '반국가', '권력 카르텔'의 올가미를 씌운다. 언론과 역사를 통제하여, 사상과 감정, 비판과 토론, 표현의 의견의 자유를 말살하려 한다. 스탈린이, 그리고 문화혁명 시기 마오가 하던 짓이다.
이는 국민의 인권을 파괴하고 존엄을 모독하는 짓이며, 국가의 질서와 역사의 미래를 뒤흔드는 행위이다. 대다수 국민의 삶을 위험에 빠트리고, 역사를 이승만, 박정희 시대로 퇴행시키는 이 거대 범법 행위에 어찌 죄를 묻지 않을 수 있나?!. 박근혜가 쫓겨나고 단죄된 이유는 많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였다. 황소개구리가 그 짓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야말로 시민을 모욕하고 민주화의 노력을 뒤덮는 죄악이다.
"탄핵"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입에 올리지 않으려고 했던 이 두 글자는 그 자신이 몰아온 것이다.
"어지러움"(亂)은 위에서부터 일어난 것이다.
하루라도 더 지켜보기 어려워 난 오늘 먼저 황소개구리에게 탄핵을 선고한다.
이어 탄핵 선고문이 작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