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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팔영감'과 '오베(Ove)' (박옥남과 베크만)

검하객 2024. 1. 2. 11:39

  박옥남(1963-)의 소설 썬딕이」(2007)에는 전라도 말을 찰지게 구사하는, 홀아비에 다리를 저는, 성격 고약한 씨팔영감이 등장합니다. 말끝마다 씨팔을 달고 살아 씨팔영감입니다. 인정머리 없는 고약한 인물이지요. 이 씨팔영감이 본의와 무관하게, 마을의 문제 고아 썬딕이’(본명은 선덕)를 맡게 됩니다. 그 이후로 다른 면모를 보입니다. 어느 날 씨팔영감이 술을 마시며 나(서술자)의 아버지에게 자기 내력을 털어놓습니다. 그는 젊어 청루의 여인을 지독하게 사랑한 풍류 순정남이었고, 그 사연으로 예기치 않게 세상을 표류하다가 중국 땅에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 그는 너무 다정해서 무정해진 것이었습니다. 정이 깊어 매정해진 것이지요

  스웨덴 작가 베크만(1980-)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 ( En man som heter Ove  / A Man Called Ove, 2012)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2015)를 보았습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청년기에 아버지를 잃고, 또 얼마 전에 아내를 잃은 오베가 주인공입니다. 오베는 무채색, 무감동 유형의 인간입니다. 원리와 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자기 안의 여러 색깔을 발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감정의 울림을 표현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직장마저 잃고 매일 죽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젊은 부부의 가족을 만나면서, 자기 안의 여러 색채를 발견하고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게 됩니다. 그리고 곧 죽습니다.   

  새해 첫날인 어제 영화를, 남자 주인공이 마을 거리에서 담배꽁초를 줍는 장면부터 보았습니다. 인물의 표정과 마을의 풍경을 보는 순간, 이 영화는 봐야지 이렇게 마음먹고 하던 일을 접었습니다. 영화가 끝나는 장면에서, 너무 다정해서, 그 넘치는 정의 표출이 봉쇄되자 무정해지고 매정해진 사람 씨팔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오베는 어려서부터 발견하기도 전에 마음의 색채와 물결이 봉인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표정은 무미하고 언행은 건조해진 겁니다.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릅니다. 베크만의 소설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군요. 한국에서라도 박옥남의 소설이 많이 읽히면 좋겠습니다. 나의 올해 작은 소망입니다.  

 

 

 

 

 

 

 

En man som heter 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