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삼연을 처음 만났고, 1997년 한 해를 온통으로 삼연으로 학위논문을 쓰는 데 보냈다. 부친은 힘겹게 병마와 사투 중이었고, 두리는 겨우 세 살이었다. 1988년 이후 한문학 연구에 회의가 생겨 삼연을 떠났다. 하지만 그 시절 공부는 이후의 연구에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최근 삼연에 대해 물어 오는 곳이 있어 여러 날 삼연을 다시 만났다. 그 사이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제 다시 보니 이해를 위해 애쓰지 이해되고, 공감하려 하지 않아도 절로 공감되는 시들이 많다.
한편 이 시기 유럽에는 스피노자(1632-1677), 뉴턴(1642-1727), 라이프니쯔(1646-1716) 등이 살았다. 같은 시대건만 멀리 떨어진 두 지역 사이엔 세계의 크기와 지식 산출의 속도가 너무 컸다. 두서없는 상념에 잠기며 몇 수 시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을 적는다.
憶我讀書日, 年方阿岳時. 排雲千里轡, 映雪一冬帷.
蹤迹眞如夢, 聰明久矣衰. 南華百千誦, 今日僅能詩. 권 7, 「感舊棲」
1699(47세) 겨울, 젊은 시절 글을 읽었던 강화 적석사에서 지은 시이다. 힘과 나이가 산악과 같던 시절, 구름을 헤치며 천 리를 돌아다녔고, 한겨울 내내 눈이 되비치는 달빛으로 글을 읽었는데, 그 시절이 이젠 희미한 꿈만 같아 아련하다. 삼연이 여기서 공부한 것은 과거 준비가 아니었다. 겨우 마흔일곱인데 총기가 쇠했다고 했으니 오늘날 보면 우습지만, 마흔 살만 되어도 어르신 대접 받던 시절이다. 그는 시를 좋아했다. 장자의 『남화경』을 읽고 또 읽어 외우다시피 했는데, 그게 자기 시의 근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