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식(1879-1923)은 1896년 향리에서 조정완(趙貞琓, 생몰년 확인)과 혼인하여 1녀1남을 낳는다.
따님 명호(明浩, 1906 - 확인)는 1920년 민필호(1898-1963)와 혼인한다.
아들 상호(尙浩, 1912-1929)는 항주에서 요절하여 근교에 묻힌다. (아!)
신명호와 민필호 사이에서 2남 4녀가 태어난다.
(필자 미상의 「석린 민필호 선생 약전」, 「연보」 에는 4녀 2남이라 했는데, 아래 이계형의 글에서는 2남2녀로 소개)
이중 둘째인 泳珠(1923 - )는 1945년 김준엽(1923-2011)과 결혼한다.
부부는 해방 이후에도 난징의 국립동방어문전문학교에서 근무하다가 1949년에야 돌아온다.
민필호는 존경하는 장인을 위해 「예관 신규식 선생 전기」를 지었고, 김준엽은 같은 이유를 『석린 민필호 전』 을 엮었다.
검색해보니 2019년 2월 1일 "파주시장 민영주 여성여성지사 위문" (파이낸셜)이라는 기사가 뜬다.
민필호의 첫 따님이자 신규식의 손녀인데, 당시에도 요양병원에 입원중이었으니 아마 타계하셨을 듯하다.
또 올해 8월 15일 자에는 "독립유공자 민영백 시구" (고척구장) 기사가 여러 곳에 뜬다.
예관을 쫓아가다가 오늘은 여기 이르렀다.
가을비가 내리는 오늘, 가장 마음 아픈 건 불과 17살에 죽어 항주에 묻힌 조선 소년이다.
독립운동가들의 가족(특히 부부) 관계에 대해서는 아래 글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계형,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어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독립신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https://imjung0411.com/story/cn.do?rid=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