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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검하객 2024. 12. 14. 19:08

지난 10년 블로그에 올린 글 중에 가장 많이 인용, 또는 변용했던 시는 김수영의 <절망>이다.  
얼추 열 번 가까이 된다. 
이 시에서 잘 이해되지 않았던 구절은 6, 7번째 구절이다. 
 
   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그런데, 이제 시인의 마음을 알겠다.   
이 시가 지어진 시점은 1965년 8월 28일이다. 
이 전에 시인은 1961년 5. 16 군사쿠데타로 4. 19 정신의 좌절을 경험했다.
그리고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이 조인되었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 되풀이되는 역사에 김수영은 절망했다. 
그런데 위 두 절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는 그런 구원의 순간을 체험하지 못했다. 
시인의 간절한 바람이다. 
오늘 문득 나는, 혹 우리 역사에 어떤 구원이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영이 체험하지 못한 것을 예감한다.
 
  곰팡은 곰팡을 반성하지 않고 (2017. 1. 13)
 
  올림머리가 올림머리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담마진이 담마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법꾸라지가 법꾸라지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病憂가 병우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 가끔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이 바람은 우리를 이 들끓는 더위에서 구해줄까, 기대를 해본다. 하지만 돌아보니 재벌은 재벌을 반성하지 않고, 검찰은 검찰을 반성하지 않고, 기독교는 기독교를 반성하지 않고, 조중동은 조중동을 반성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름장어 한 마리가 나타나서 정치를 바꾸고 나라를 구할 것처럼 혹세무민한다.
 
  기해왜란 (2019. 7. 9)
 
침략은 침략을 반성하지 않고
교활이 교활을 반성하지 않듯
수난은 수난을 반성하지 않고
피해는 피해를 반성하지 못한다
 
  파멸, 검찰 단상 (2020. 11. 25)
 
어둠이 어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무지가 무지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협잡이 협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교만이 교만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탐욕이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지진은 딴 데서 오고
붕괴는 정해진 그 순간에 오고
파멸은 끝까지 그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검찰 찬가 (2020. 12. 24)
 
98만원 향응에 취한 코는 향기를 반성하지 않고
선배를 몰라본 눈은 무례를 반성하지 않고
전관예우로 부른 배는 포만을 반성하지 않고
영감님 소리 듣던 귀는 캔디를 반성하지 않고
칼춤 추는 망나니는 끈적한 피맛을 잊지 못한다
바람은 저승서 불어오고
관을 실은 배는 다가오는데
배 터져 죽은 개구리는 창자가 튀어나와도
찬란한 허세를 반성하지 않는다
 
  조선왈보 찬가 (2020. 12. 26)
 
똥 먹던 입은 입을 반성하지 않고
방분하던 버릇은 버릇을 반성하지 않고
권력에 살랑대던 꼬리는 꼬리를 반성하지 않고
주인을 바꾸던 낯짝은 낯짝을 반성하지 않고
날리는 개털은 개털을 반성하지 않는다
바람은 큰 산에서 불어오고
老虎는 그림자로 비치어온다
한 마리 똥개가 짖자 동네 똥개들이 따라 짖으니
왈왈은 끝내 왈왈을 반성하지 않는다
 
  이진숙과 홍명보, 윤석열과 정몽규 (2024. 7. 31)
 
수치는 수치를 끝내 반성하지 못한다.
무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옷으며 온다.
 
  즐거운 저주 (2024. 9. 24)
 
야비가 야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오만이 오만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독선이 독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무지가 무지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몽규와 명보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악풍은 사방에서 몰아쳐오고
구원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고
파멸은 끝꺼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