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산뜻한 오류, 평범한 상식

검하객 2014. 5. 30. 11:48

 오후 세시에 멈춘 시계 (김용범, 1974년 심상)

 

 구겨진 담배곽 -> 구겨진 담벼락

 

 

시인과 소설가 (오탁번)

 

어느 날 거나하게 취한 김동리가

서정주를 찾아가서

시를 한 편 썼다고 했다

시인은 뱁새눈을 뜨고 쳐다봤다

—어디 한번 보세나

김동리는 적어오진 않았다면서

한번 읊어보겠다고 했다

시인은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우는 것을……

다 읊기도 전에

시인은 무릎을 탁 쳤다

—기가 막히다! 절창이네그랴!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단 말이제?

소설가가 헛기침을 했다

—‘꽃이 피면’이 아니라, ‘꼬집히면’이라네!

시인은 마늘쫑처럼 꼬부장하니 웃었다

—꼬집히면 벙어리도 운다고?

예끼! 이사람! 소설이나 쓰소

대추알처럼 취한 소설가가

상고머리를 갸우뚱했다

—와? 시가 안 됐노?

 

그 순간

시간이 딱 멈췄다

1930년대 현대문학사 한 쪽이

막 형성되는 순간인 줄은 땅띔도 못하고

시인과 소설가는

밤샘을 하며

코가 비뚤어졌다

찰람찰람 술잔이 넘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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